아홉 살 딸이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케이팝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 친구들 다 잘하는데 나만 못해.”
수업에 갈 때마다 침울한 얼굴로 들어서는 딸을 달래며 살짝 걱정도 됐는데,
어제 선생님이 보내 온 영상을 보니 조금 삐걱대긴 해도 제법 귀엽게 잘 추고 있었다.
몇 번이나 돌려보며 엄마 미소를 흘렸다.
딸이 제니의 ‘Like Jennie’에 맞춰 깡충깡충 귀엽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오래된 필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수가 꿈이던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춤을 엄청 잘 추는 건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춤을 췄다.
우리는 셋이 붙어 다니던 삼총사였는데, 그 친구는 가장 활발했고 인싸였다.
수학여행이면 빠지지 않고 춤을 췄고, 노래방에만 가면 작은 방이 콘서트장이 되곤 했다.
그 친구가 꼭 아이돌이 되겠다고 하면, 나는 코디네이터를 해주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매니저를 하겠다며 응원했다.
그런데 친구는 아이돌이 아니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20대 후반,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몇 번의 도전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험하다는 사회복지 공무원을 꾸준히 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지금은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sns에 여전히 아이돌 댄스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춤추는 영상을 올린다.
결혼은 하지 않은 듯했다.
그 친구는 어쩌면, 꿈을 반쯤 이룬 걸까?
또 다른 친구는 ‘절대 결혼 안 할거야.’라고 호언장담하던 친구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염세주의자’라고 놀리곤 했다.
세상의 모든 시스템과 제도들이 마음에 안 든다며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단언하던 친구.
그런 그녀가 내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스물여섯에 결혼했다.
나는 어땠을까.
얼굴에 여드름이 많아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아이.
피부를 망친다는 걸 알면서도 어른들의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르고 다녔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면, 내 피부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꾸 뒤로 숨던 아이였다.
그랬던 내가 방송일을 하게 됐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싹을 보면 안다’라는 말도,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여고 시절 함께 몰려다니던 우리 셋만 봐도 그렇다.
지금 모두 예상 밖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인생은 예측할 수 없기에 더 아름답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자기 리듬대로,
춤추듯 살아가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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