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의 고찰과 생각_
4.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고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이 늘 많이 하는 소리가 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면 주식 등을 해서 성공할 것이다. 뭐 그런 소리. 가끔씩 이런 이야기 주제는 우리 가족 내에서도 나오곤 했다. 이때 나는 생각했다. 시간은 무엇이길래 우리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하나? 어떨 때는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 것에 대한 후회를 느끼게 하고, 어떨 때는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아서 지루함을 느끼게 하고, 어떨 때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촉박하게 하는 걸까? 시간이란 건 어떻게 철학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이에 대한 대답을 해보려고 한다.
과거의 시간
우리는 가끔씩 추억회상을 하곤 한다. 아 그땐 그랬지. 아~~ 이때는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럽네 등과 같은 회상을 말이다. 이때 나는 우리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여기서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을 잃기도 한다. 어떨 때는 이때는 이런 실수를 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을 수 있어! 하고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대학생 때, 직장인이었을 때, 자식이 생겨 부모가 되었을 때등 인생의 여러 행복했던 순간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웃으며 행복해지기도 한다. 즉 우린 추억의 시간을 나누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힘들 때, 괴로울 때는 이가 달라져버리게 되는데 어떻게 되냐면 우린 그 추억의 시간에 갇혀서, 괴로운 현실을 도피하게 되곤 한다. 이때는 내가 잘 나갔는데, 지금은... 과 같이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추억의 시간에 갇힌 것은 나쁜 것일까?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방어 반응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기에, 너무나도 무섭고 공포스럽기에, 그저 따뜻했던 감정이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본능. 편안한 마음이 되고 싶은 본능.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본능이기에 난 날 가두는 과거의 시간 또한 품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하고 물을 수 있다.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지 사람이 성장해서 잘 되는 거 아니야? 이건 그냥 도피잖아?' 하고 반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일부분도 나라고. 나라는 것을 거부하고 나아갔을 때 끝이 어떨까? 마음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을 때, 무리해서 여러 일들을 받아내서 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서, 지방에서 상경해 서울로 간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이 향수병에 걸려서 힘들어한다고 쳐보자. 이때, 이를 잊기 위해 미친 듯이 학업에 충실하고 아르바이트하고 한다고 쳐보자. 그렇다고 한들, 마음의 공백이 사라질까? 사라졌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잠깐 바빠져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 것일 뿐,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집, 가족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이 학생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나는 지금 집을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고 깨달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시간에서 깨달은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전히 외롭다.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띄어쓰기가 연타되고 있다. 공백이 생기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의 시간
과거의 시간에서 얻은 깨달음에 있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시간이 뭔데? 하고 물을 수 있겠다. 말 그대로다. 현재를 생각하는 거다. 근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러면 아까 예시에서 말한, 학업이랑 알바에 미친 듯이 집중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지게 하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 그것도 현재를 위해서 엄청나게 일하고 공부하는 거잖아?'라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나의 주변이 아닌, 나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나를 가꾸고 나를 신경 쓰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외면이 아니라 내면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의 시간. 즉,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자는 것이다. 내 마음이 어떤지를 확실하게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그에 맞춰 행동하자는 것이다. 아까 나왔던 앞의 예시 같은 경우에는 내가 집, 과거,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현재의 나를 가꾸기 위해,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곳에 전화를 건다. '엥? 근데 그러면 아니 아무 효과도 없는 거잖아요?' 할 수 있다. 전화를 거는 그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그 시간을 취미생활, 다른 여가 활동, 친구와 함께 하는 일에 써보자. 그러나, 그리움을 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억지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그냥 가끔씩, 하고 싶을 때 하고 놓고 싶을 때 놓고 하며, 조금씩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것이다. 즉, 시간의 흐름에서 내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그 아픔을 조금씩 놓아주는 거다. 그러다 보면 현재의 추억, 현재의 시간으로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가득 차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거다. 그런데, 아픔은 상처는 크게 크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아프지 않게 되었더라도, 상처의 흉터는 남았다. 앞의 예시와 달리, 영원한 이별 같은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는 어떻게 지워야, 아니 어떻게 잊어야 할까? 어떻게 연하게 만들 수 있을까?
미래의 시간
상처의 흉터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계속 계속 행복한 일을 들이부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흉터를 인정하자. 아픈 것을 인정했듯, 흉터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안다. 그러나, 나아가야 한다. 실패로부터? 아픔으로부터? 교훈을 얻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이다. 실패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천천히 부정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오면 미래의 시간이 보일 것이다.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밝지는 않더라도. 내가, 나를 위하는 누군가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말이다. 반짝이는 추억이 미래가 되는 순간을 말이다.
이 글에 대한 마무리
이 글은, 이별에 대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과거의 시간에 갇힌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사람은 아픔과 고통, 이별을 겪습니다. 그것이 엄청나게 힘들고 무거운 일임은 압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같은 좋은 사람들이 슬픔과 고통 때문에 밝은 빛을, 여러 가지 색깔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도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겠죠. 그래서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너무 냉소적으로 공감이 아닌, 이런 거예요, 저런 거예요. 하고 써서 당연히 그렇겠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라서, 그런 거겠죠. 아픔을 딛거나 견디는 것이 아닌 인정하고 웃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거겠죠. 언젠가는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오늘도 들어가는 코멘트이자 마음가짐.
오랜만에 시험이 끝나고 글을 쓰니,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어떻게 하는지 다 잊어버린 것 같아서 조금 힘들고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썼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학생,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기에 도덕, 윤리적으로 반하는 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단지 한 명의 작은 학생, 단 한 명의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의 간단한 의견이기에, 소리와 의견이기에 잘못되었을 수 있다. 모순되었을 수 있다. 늘 말하듯, 꼭 내가 말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아닌 것 같다던가, 이상하다던가 싶은 점들은 마음껏 비평해 주기를 바란다. 그럼 그 말을 토대로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성장하고, 나에게 그런 부족함을 알게 해 준 사람과 서로를 위하며 이야기해보며 서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