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의 고찰과 생각_
5. 나라는 것에 대한 고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끔 생각을 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다, 이게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가?하고 예를들어서 어떨 때는 '공부 열심히 해야지.'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하기 싫어진다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취미생활을 시작하는 등의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영향을 받거나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저거 멋있다 한 번 해봐야지.'와 같이 말이다. 그때 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맞는가? 어제의 나 아니 단지 몇 분, 몇 시간의 전의 나도 나와 다른 결론을 내리는 데다가, 내가 하는 행동마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면 내가 내가 맞는 걸까?라고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 나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 의심의 종착역은 나의 생각과 선택의 괴리감이기에, 아플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그럴 수록 나에 대한 의심은 커져만 간다. 난 뭘까?하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나에 대한 의심
몇 번의 실패와 생각하던 자신과 다른 괴리로 인해 생긴 의심은 계속 나에게 묻는다. 이가 모든 고찰의 시작이 된다. 수많은 질문의 시작이 된다. '넌 뭐야?', '하고 싶은 건?', '꿈은?', '잘하는 건 있어?', '이렇게 놀아도 괜찮아?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고 있을텐데?',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대해도 돼?', '주변에 있는 것들을 너무 놓치고 사는 건 아냐?, 잊고 살면 너만 안 좋아질 껄?' 그러한 수많은 질문 속. 빠지면 빠질 수록 더 강하게 울부짖는 것이 있다. '넌 왜 그렇게 살아?, 사는 이유가 뭐야?, 너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처럼 제대로 살지도 못하잖아?, 너가 책임지지 못할 것들을 왜 그렇게 많이도 만들고 있는거야?' 그건 단지 '나에 대한 의심'이 건네는 존재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러한 의심이 건넨 질문은 나에 대한 불신이 되고 만다. 난 나를 믿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날 증명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내가 생각한 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때부터 불신이 번지고 날 믿지 못하고 날 잃게 되고 만다. 그로 인해 아픔을 느끼게 하는 나에게 난, 증오를 느끼고 만다.
잃어버림과 증오
결국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감돈다. 내가 잘할 수 있다면, 무언가 짊어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괜찮았던거 아냐? 이런 고민을 할 일이 없었던 거잖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무능함, 할 수 없어서 하지 않은 무력감에 난 나를 증오하게 된다. '쓰레기 같은 게, 잘하는 것도 성격도 하나 좋은 게 없는데 뭐가 잘났다고 기세 등등하게 사는 거야?, 긍정적으로 사는 척해서, 밝게 자신을 보여서 그걸 다 가려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데?, 기껏 해봤자. 조금 노력하고 아니다 노력도 안 하겠지. 뭐 하겠다고 말해놓고, 지킨 건 있어? 없잖아.'하고 끔찍한 말을 나 자신에게 쏟아붇는다. 그리고 그건, 어느 순간. 열등감이 되어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저걸 잘해?', '왜? 나는 안 되는데, 똑같은 사람인데 불공평 하잖아. 저 사람은 저렇게나 대단한데 왜? 나는 사는 게 이 모양인거야?'하고 그리고 이때 그 사람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에게 있어, 자신이 성장한 것처럼 느끼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의 빈틈을 찾았으니. 난 더 대단한 사람이겠지?'하고 말이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내가 운이 좋았던 것은, 내가 인터넷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댓글을 달거나 하는 경향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사람을 가족으로써 가까이 봐왔기에, 저러한 것은 엄청난 노력의 산물의 결과물이다라는 생각 덕분에 저 노력을 깎아 내려서는 안 되고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과 경향이 있어서 이러한 경향이 이러한 상황을 겪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이지만 달리 존재했기에, 대부분이 자기혐오로만 돌아갔다는 것이 아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픈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것을 잊으려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봤다. 글 쓰기, 그림 그리기, 악기 다뤄보기등과 같이 말이다. 뭐, 해보아도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남을 깎아내리든, 자기혐오를 해서 더 나은 내가 되려고 하든 그렇지 않든, 원인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채로 나 자신을 아프게 한다. 그럼 이때의 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찾는 것과 믿는 것
지금의 난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대뜸 이게 무슨 소리인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이런 식으로도 추측할 듯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내라는 건가요?하고 하지만 그게 아니다. 어떤 나든 나를 믿어라.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아니 당연한 소리가 맞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믿으라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한일은 내가 책임지게 되어있다. 그것이 옳은 일이든, 그른 일이든, 그 행동에 대한 응당한 대가는 내가 치르는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지게 될 나를 믿으라고, 내가 지금 해내지 못했어도, 해내지 못한 것에 의한 과업과 업보는 언젠가는 꼭 짊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성장한 내가 그것을 짊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너무 긍정적인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은데요. 이건 전처럼 일을 미루는 것과 뭐 다를 바가 없는 것이잖아요. 그냥 성장하지 못하는 거 잖아요.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인 거잖아요. 그렇다. 그것이 중요한 점이다. 그냥 그 상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 지금 있는 시련을 피한다는 것, 부딪치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나약하다는 것, 무능하다는 것 그것을 죄로써가 아닌, 그저 나의 일부분으로써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뭐, 난 그런 사람인걸!~하고 그럼 그때, 보이게 되는 것이 있다. 확실하게, 나의 나약함만, 그것에 불안해 하던 감정들은 사라지고 그럼 난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럼, 난, 우리는 조금씩 그 나약함을 메우고 나 자신을 믿게 되겠지, 그리고 그 나약함을 메우려 하지 않아도 이미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더 괴로워할 일도 없게되고 말이다. 물론, 여기서 가만히 있기보다 나아가는 것이 조금 더 좋은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굳이 왜 이렇게까지 나라는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마인드도 바꾸고 별의 별 고생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건.....
사랑하는 법
난 아직도, 완전히 나에 대한 증오를, 혐오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관계에 서투르고 맡은 바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배려가 부족하고 생각이 짧은 바로 지금의 일만 볼 수 있는 그러한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나와 지금의 난 섞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증오는 남아있다. 이를 가리기 위해 밝아지려고 해도 크게 소용이 없다. 여전히 열등감이 남아있다. 뭐, 이런 건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생긴다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 남한테 피해를 주고, 남을 사랑하는 것을 못하는 거겠지. 그럴 때 마다 드는 생각은
그리곤 생각하게 된다. 떠올리게 된다. 과거부터 듣고 생각했던 말을, 남에 대한 나의 행동은 나의 거울이다. 남을 대하는 나의 행동은 나를 대하는 행동이다. 다른 사람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 나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남을 괴롭히는 나의 행동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 부터 시작해, 나에 대한 증오, 남에 대한 열등감, 깎아내리기로 이어지기에 그건 아마 그렇게 되지 못한 나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다. 남을 깎아내렸을 때는 구멍이 절대 메워지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에게 의지만 했을 때도 이는 마찬가지, 그렇기에 난, 나를 사랑해야만, 이 구멍을 메워 남을 사랑할 수 있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나를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최근 이를 더 확실하게 통감하는 일이 있었다. 친구와 싸웠다. 뭐, 사소한 이유였다. 체육시간은 늘 사람이 많지 않나? 그래서 모두가 이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같이 코트를 쓰던 도중, 다른 사람들이 코트를 쓰고 싶어하고 쓰고 싶어 하는 것 만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부족한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게 더 낫겠지?, 다른 사람들이 쓴다면 더 즐거울거야, 다른 사람들이 즐거우면 된거지!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게 문제였다. 친구와 소통하나 없이 나혼자 독단적으로 자리를 이탈해버리고 만 것이다. 친구는 내가 생각한 생각들을 알리가 없으니, 당연히 어이없어 할 것이다. 게다가 이틀 연속 그런일을 당했으니, 얘가 왜 이러지 싶었을 것이다. 처음엔 그 친구가 걱정해주었다. 나한테 무슨일이 있는지 말이다. 그러나 반복되니 조금 화가 났는지 나에게 화를 냈다. 그때 느꼈다. 아아.... 난 이 친구의 상냥함에 너무 기대고 있었구나, 너무 의존하고 있었구나. 그러고 나도 사람인지라 그것을 느끼고도 서운해서 혼자서 있을 때, 좀 많이 서운해 하긴 했지만, 이것이 내가 나를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기에, 남을 비판하는 형태가 아닌, 남에게 의존하는 형태의 나 자신이 되어버려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를 사랑했더라면, 그 친구의 상황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도 생각해서, 절충안을 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나의 행동은 나의 거울,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에 친구에게 나의 의견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생긴 일.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 동안,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생긴 일로 인해 생긴 일들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깎아내리고 놀린 것, 중학교 때, 수업시간 분위기를 흐린 것, 고등학교 때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쌓지 못해 친구들에게 상처만 준 것.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긴 일들 모두를 말이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이 글에 대한 코멘트
오늘은 이 글에 대한 마무리가 아닌 코멘트로 끝내고자 한다. 이 글은 나의 생각 가장 깊은 곳 까지의 글을 적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하기에 코멘트로 끝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은,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라는 것을 말하는 글이다. 그리고 난 그런 나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를 적었다. 누구나 일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또 그렇기에, 난 내 본심을 적은 글을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다다. 이 글의 전부다.
늘 들어가기로 했던 마음가짐
이 마음가짐이 들어가기 시작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남아있어서? 물론 그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니다. 나 자신이 부족한 것을 나 자신을 조금씩 믿을 때 마다 절실하게 통감하면서,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또 다시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이 마음가짐을 마음 속에 나의 제일 1번째의 신념으로 삼기 시작했다. '나는 부족해, 내가 제시하는 생각과 의견이, 나의 정의일 수도 있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이건 악일 수도 있는 거야. 늘 그 점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고 늘, 누군가와 나 자신을 아프게 해서는 안 돼.' 그렇게 이 마음가짐은 나에게 있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이 마음가짐은 내가 완전히 나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늘 언제나, 내가 자리를 잃어도 다시 일어나, 남을 지키고 다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도록 말이다. 그렇기에 이 마음가짐은 늘 언제나 존재하겠지. 이 글들 전체에. 나의 마음 전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