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삶을 생각하면서
미국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은둔하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선택한 고독의 시간은, 다른 용어로는 '자발적 고립'이라고 말을 한다. 그녀는 시를 쓰면서 자기의 방 안에서 외부와 단절한 채 방문을 사이에 두고 쪽지로 대화하고 식사마저도 홀로 하는 등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무슨 이유 때문에 스스로 고립의 세계로 들어간 것일까? 그녀가 쓴 몇 편의 시를 보면 에밀리 디킨슨의 마음을 추적해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그녀의 속마음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후세의 우리가 마음대로 혹은 여러 이유를 붙여서 내키는 대로 추론할 수 있을 뿐 그녀의 허락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을 알리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책이 많이 팔려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서, 유명 작가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은 마음에, 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간절한 바람 등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이것이 당연한 작가가 걸어가는 과정인데 디킨슨은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마음속으로 "그런 결과가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현대에는 작가 스스로 혹은 출판사가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서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길인데 그녀는 왜 스스로 자기가 쓴 많은 작품을 외부에 알리는 행위조차 거부했던 것일까?
에밀리 디킨슨의 집은 풍족했다. 그래서 굳이 그녀가 돈을 벌 필요는 없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아파서 집에 누워있던 엄마의 병간호를 위하여, 집 밖으로 나가서 다닐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쓴 수많은 시를 세상에 알리려는 생각을 왜 안 했는지 실로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스스로 고립의 세계로 들어갔다. 애초부터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시를 쓴 것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시를 썼고 시를 통해서 생의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열렬히 사랑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남자와의 결혼은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라고 다른 사람들은 추론한다.
그녀는 시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디킨슨 자신에게 '시'라는 매개체로 대화를 시도한 것이고, 자신도 '시'라는 답변으로 자기에게 답장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디킨슨의 마음에서는 이런 '시'들을 굳이 외부의 여러 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자신에게 보낸 편지이기에 자신이 아닌 외부인에게 애써 알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삶은 이런 시간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할 정도의 고독한 작가가 있었다. 외부 사람과는 접촉을 거의 차단한 상태로 외롭게 혼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헨리 다거'가 바로 이런 유형의 작가이다.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도 않았고 알 수조차 없었다. 물론 그도 자기가 쓴 글과 그린 그림을 외부에 알리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에밀리 디킨슨처럼 지인이나 가족조차 없었고 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적도 거의 없었다. 오로지 평생 청소부 직업으로 혼자서 고독 속에 살다가 혼자서 조용히 죽었다. 청소부를 하면서 퇴근 후에 남은 시간에 수많은 글과 그림 작품을 남겼지만 아무도 몰랐고, 그도 굳이 세상에 알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에밀리 디킨슨보다 더 극단적인 자기만의 고립을 선택했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갔을까?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헨리 다거'는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했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았던 에밀리 디킨슨은 직업도 없이 시를 쓰면서 혼자만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헨리 다거'는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으로 후세에서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매우 뛰어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그의 천재적 능력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반면에 에밀리 디킨슨은 처음부터 은둔하는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상인이었고 배움도 상당했기에 나중에 자신만의 고립의 세계로 들어간 이유에 대하여 쉽게 답변을 내릴 수 없다.
"글을 쓰려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써야만 한다."라는 니체의 의견에 정확히 어울리게 에밀리 디킨슨은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신을 향하여 '시'를 쓴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인생관은 요즘 자기의 글과 책을 세상에 알리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면서 나도 그녀가 해온 것처럼, 외부에 알리지 않는 나만을 위한 작품들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런 삶도 나름 가치 있는 인생 여정이 아닐까?"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특이한 것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는 제목이 없다. 또한 시의 규칙이나 기본적인 방식을 무시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예를 들면 대시 혹은 줄표 같은 모양으로 시를 다르게 써 내려갔다. 이런 것들 때문에 여러 비평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디킨슨이 자유롭게 이런 시를 쓴 이유는 그녀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시를 쓴 것으로 보이며 자기 자신에게 쓴 '시'이니, 자기 마음대로 쓴들 외부의 그 누가 말을 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어느 평론가가 쓴 의견은 "언어의 중단은 뜻의 흐름 속에서 언어를 끌어낸 후 언어를 기호자체로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언어가 기호 자체가 되는 순간,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무의미해지고 언어가 구축한 세계는 모두 부정된다. 줄표로 인해 '이성'으로 설명되는 모든 세계가 파괴된다."라고 말한다.
에밀리 디킨슨과 함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여동생 라피니아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거의 1,800편에 달하는 디킨슨의 매혹적인 시들이 많은 편지와 함께 한 줌의 재로 변해 버렸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라피니아는 언니의 시들을 보자마자 그 진가를 알아보고 곧장 출간을 서둘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초기 비평은 마치 소복 같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집에서 은둔 생활을 했던 그녀의 기괴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실제로 그녀의 숨겨진 삶을 들춰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녀는 아주 혁신적인 여성 시인으로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넘어 미국 현대시의 원조로까지 통하고 있다. 내가 앞에서 거론한 미국의 위대한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월트 휘트먼, 윌리스 스티븐슨, 로버트 프로스트, T.S. 엘리엇 등과 함께 에밀리 디킨슨을 주요 미국 시인으로 꼽았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흔히 삶, 사랑, 자연과 죽음의 주제로 분류된다. 그녀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아주 강렬하다. 주제마다 번득이는 재치와 진솔한 열정, 예리한 통찰아 돋보인다. 그것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철저한 예술가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변별적 특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처음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접한 이후부터 아직도 그녀의 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아래에는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그녀가 쓴 몇 편의 시를 열거하였다. 영혼마저도 신비로운 에밀리 디킨슨의 삶을 떠올리며 시를 읽어보면, 가슴에 더 절절히 와닿는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디킨슨의 애송시였던 에밀리 브론테의 시 "제 영혼은 겁쟁이가 아닙니다"를 지인이 낭송했는데, 이 '시'의 일부도 뒤에 적었다.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느냐고요?)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느냐고요?"
왜냐하면---
바람은 풀밭한테 대답하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바람이 지나가면
풀밭은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왜냐하면 바람은 아는데 ---
당신은 모르고---
우리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그런
지혜만 있어도 충분한데요---
번개는---눈한테 왜 감냐고
절대 묻지 않아요---번개가 치면---
눈을 말할 수 없고---말을---
할 이유도 없이---얌전한 사람들은
그냥 그런다는 것을
번개도 알기 때문이에요---
일출도---그대여---나도---압도해요---
일출이기 때문에---나도 바라봐요---
그러니까---그래서 ---
나도 그대를 사랑해요---
(거친 밤이여)
거친 밤이여---거친 밤이여!
내 그대와 함께 있다면
이 거친 밤에
사랑을 불태울 텐데!
항구에 있는 사람에게는---
바람이 불어도 상관없다---상관없다---
나침판도 필요 없다---
지도도 필요 없다!
에덴에서 노를 저으니---
아, 바다여!
오늘 밤---내가---그대에게---
정박할 수 있다면!
(견디려 밤을 공유하고)
견디려 밤을 공유하고---
아침을 나눈다---
채우려 지극히 행복한 고백
경멸하는 공백---
여기도 별, 저기도 별,
누군가는 길을 잃는다!
여기도 엷은 안개, 저기도 마찬가지,
결국---날이 밝는다!
(나의 강은 그대에게로 흐르고)
나의 강은 그대에게로 흐르고---
푸른 바다여! 나를 반겨줄 건가요?
나의 강은 대답을 기다려요---
오 바다는---자비로운 듯하군요---
아늑한 곳에서 발견한
개울 몇 개도 데리고 갈게요---
밀해요---바다여---나를 받아주겠다고!
(언제나 사랑했다는)
언제나 사랑했다는
증거를 가져올게요
사랑하기 전에는
살아있지 않았어요---충분히---
언제나 사랑하리라는 맹세를
당신에게 바칠게요
사랑은---삶이고---
삶은 불멸이에요---
이 말을--- 당신은 의심하나요---그대여
그러면 나는
보여드릴 게 없어요
시련 말고는---
(제 영혼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 에밀리 브론테)
제 영혼은 겁쟁이가 아닙니다.
세상의 폭풍우 거친 영토에서 바들대는 이가 아닙니다.
밝게 빛나는 하늘의 광영을 보면
믿음도 똑같이 빛나서, 공포로부터 저를 무장시키니까요.
오 저의 가슴속에 계신 하나님,
전능하고 항존 하는 신이시여!
불멸의 당신, 당신 안에서
제가 힘을 얻듯, 제 안에서 안식하는 생명이시여!
(참조 :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한 줄기 빛이 비스듬히, 나는 무명인! 당신은 누구세요?,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