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지내보며...
5년 전 혼자 스페인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바르셀로나로 향하기 전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내려 약 10시간 동안 레이오버를 했다. 암스테르담 맛보기를 하기 위해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간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나왔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라 어두운 암스테르담 거리를 조금 걷자 희한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역하면서도 풀을 태우는 냄새와 비슷한 게 이게 말로만 듣던 대마 냄새구나 하고 한 번에 예감했다. 살면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거부감이 드는 향이었다. 대마 냄새가 진동하는 해도 뜨지 않은 거리를 동양인 여자 혼자 걸어 다니는 게 새삼 위험하다 싶어 곧장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아시아 최초의 대마 합법 나라인 태국. 처음에는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더니 결국은 마약류에서 해제되고, 가정에서 재배하는 것도 합법이 되었다. 그 결과, 치앙마이를 거닐다 보면 초록색 나뭇잎을 대문짝 하게 걸어둔 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이질적인 것은 대마 커피, 대마 쿠키, 대마 음료 등 기이한 음식들이 개발되고, 이로써 국민들과 여행객들은 대마를 쉽게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국가가 나서서 대마 소비를 장려하는 느낌이랄까. 유명한 관광지나 유흥거리에서는 당연하게 소비가 향상되어 대마 관련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태다. 치앙마이 대형 쇼핑몰 중 하나인 마야몰 푸드코트 건너편에서도 대마를 파는 부스가 있다. 밥을 먹으러 지나다니다 보면 대마 음료를 먹거나, 대마를 사고 있는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 마약 중독에 관한 영상이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되었다. 흔히들 대마는 담배보다 약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독성이 강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인 곳이 있으니 그만큼 마약이라고 칭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다. 내가 본 영상에서 대마는 게이트 드러그(gate drug)라고 지칭한다. 대마초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마초를 시작으로 강도가 더 센 약으로 진입하기 훨씬 수월해진다. 보통 대마초를 파는 곳에서 대마초만 팔지 않고 필로폰, 코카인, 합성대마 등 여러 종류의 마약도 함께 판매한다. 대마초를 입문하는 순간부터 더 넓은 마약의 세계에 진출하기 쉬워져서 대마초를 게이트 드러그라고 부른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대신 그만큼 더 쉽게 마약의 세계로 빠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도 마약 문제로 뒤숭숭하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마약률이 오르고 있다는 뉴스에 정말 놀랐다. 라떼만 해도 마약이라는 건 미드나 영드에서 나오는 상상의 것, 마치 유니콘같이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지 쓸쓸할 뿐이다. 마약을 한 번 하게 되면 정상적으로 분비되는 도파민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아 일상적인 자극으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이 말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무섭게 다가온다. 약을 해야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조그만 행복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예쁜 풍경을 볼 때, 게임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도 약이 있어야지만 정상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이니까.
유튜브 영상을 보니 ‘마약’이라는 단어사용을 절제하자는 캠페인이 나왔다. 우리가 무심결에 ‘마약김밥’,’ 마약치킨’ 등 중독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마약’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친근감 또는 호기심을 일으켜 마약 입문에 더욱 수월하게 만들 수 있으니 가벼운 의미로라도 ‘마약’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었다. 이걸 보고 나니 반성하게 되었다. 무심결에 마약 같다는 말을 사용하곤 했는데, 이게 오히려 마약을 대중적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기여하는 부분일 수도 있었다. 또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종종 ‘마약 구매하는 법’, ‘마약 투약하는 법’ 같은 음지에 있어야 할 부분들이 쉽게 방영되니 이걸 보고 따라 하는 청소년들도 나온다고 한다.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마약이라는 카테고리를 뇌에서 지울 수 있도록 주변에서 쉽게 들리거나 접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마약에 관한 것은 그 무엇도 가볍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치앙마이에서 지내보며 우선 오해는 좀 풀어주고 싶다. 태국 여행을 한다고 대마를 마구 권유하진 않는다. 종종 포털사이트에서 태국이 대마 합법이 되어 걱정이 된다며 혹시 몰래 음식이나 음료에 대마를 타진 않을까 하는 질문이 올라오는데 절대 그렇지는 않다. 대마가 들어간 음식은 꼭 표시가 되어있고, 그렇게 파는 곳도 많이 없다. 대마 음식 전문점을 찾아가진 않는 이상. 우리에겐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으니 대마 표시만 잘 보고 음식점을 선택하면 될 것 같다. 편의점에 가면 대마 잎이 그려져 있는 음료를 쉽게 발견할 수는 있다. 우리는 대마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전에 잘 숙지하고, 함부로 집지 않도록 꼼꼼하게 확인하면 된다. 또한 혹시 누군가의 권유가 들어온대도 잘 막아설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마음가짐과 확실한 처신만 가지고 있으면 될 듯하다.
많은 한국인들이 태국여행을 하며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깐의 호기심으로 인생 난이도 높이지 말기를. 사소한 행복도 느낄 수 있는 인간으로 남기를 바라며, 모두 안전하고 똑똑한 여행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