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를 배워볼까?
포털사이트에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검색하면 자동완성으로 어학원이 함께 뜬다. 덕분에 치앙마이에서 어학원을 다닐 수 있구나 알게 되었고, 입국 후 둘째 날 바로 어학원을 등록했다. 가격은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것만큼의 가격이라 치앙마이 물가에 비교하자면 가히 비싼 편이다. 일주일에 2번 2시간 수업이고 영어와 태국어 클래스가 있었는데 영어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태국어는 진입장벽이 높아 보였다. 지렁이 같은 글자를 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감도 오지 않는 태국어는 도전조차 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배우다 만 영어를 이어서 배우며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어 영어로 능통하게 소통하는 그런 일상을 고대하며 등록했다.
영어 클래스는 대부분 중국인이었으며, 그들은 그들끼리만 소통했다. 내가 원한 분위기는 이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이전에 이미 세부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여러 국가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활기찬 학교생활을 해왔던 터라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친구들 좀 사귀고 싶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홀로 조용히 토익 문제나 풀다 집에 가는 생활만 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의미 없는 생활이었다. 내가 어학원을 등록한 이유는 공부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태국어를 한번 배워보자고 다짐했다. 태국어 클래스는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겠지, 어차피 수업도 영어로 진행한다니까 영어도 배우고, 태국어도 배우고 1석 2조 아니겠나? 생각해 보니 태국까지 와서 영어수업을 받는 게 이상한 것 같기도 했다. 마치 우리나라에 놀러 온 외국인이 굳이 종로에서 중국어학원을 다니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태국어도 언어인데 너무 겁먹지 말고 배울 수 있는 만큼만 배워보자고 생각하고 클래스를 영어에서 태국어로 바꾸었다.
안내장에 써져 있는 교실번호를 찾아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큰 냄비와, 여러 가지 식재료들이 책상에 있었다. 선생님들끼리 점심식사 하는 곳으로 잘못 찾아온 줄 알았는데 수업장소가 맞았다. 나의 첫 태국어 수업은 모두 함께 똠양꿍 만들기였다. 가끔 이런 식으로 체험형 수업을 하는데 나의 첫 수업날이 딱 그 체험 날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생각했다. 태국어 수업 너무 재미있겠다고.
더군다나 이 반에는 영국, 미국, 대만, 프랑스, 중국, 러시아, 미얀마 등 세계 여러 각국의 학생들이 있었다. 첫 수업이라 눈치만 보며 조용히 앉아있는 나에게 제이라는 이름의 미국 친구가 더듬거리며 나에게 말했다.
“ uh… 쿤… 츠… 아라이… 캅…”
갑자기 훅 들어오는 태국어에 당황하며 말했다.
“쏘리, 아이 돈 노우 타이 랭귀지. 잇츠 마이 퍼스트 타임”
태국어로 대답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다. 제이는
“잇츠 오케이, 아임 비기너 투. 아이 민, 왓츠 유얼 네임?”
이후로 내 이름은 효니야, 오 내 이름은 제이야 어디서 왔니?, 나는 한국사람이야. 오 나는 미국에서 왔어, 나 저번에 제주 아일랜드 다녀왔었어. 아 정말? 너무 반갑다.
등의 간단한 소통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클래스보다 더 많은 영어를 쓸 수 있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려면 영어 클래스가 아닌 태국어 클래스를 들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수업을 변경한 것이 치앙마이 도착 후 가장 잘한 일이 되었다.
그날 수업에서는 내가 직접 마나우(라임)와 버섯을 손질했다. 다른 친구들도 직접 고추를 빻고, 마늘을 까고, 토마토와 생강을 썰었다. 선생님은 직접 사용하는 식재료의 태국 발음을 말해주고, 태국어가 아닌 영어 스펠링으로 칠판에 적어주었다. 무섭게 생긴 글자를 다 외워야 하는가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 수업은 스피킹에 초점을 두어 말을 뱉을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로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우습게도 그 수업 후에 기억나는 단어는 마나우뿐이지만.
두 번째 수업 때는 쿵이라는 이름의 대만 언니를 알게 되었다. 수업 마지막쯤엔 짝을 지어 오늘 배운 문장으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데, 아직까진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긴 역부족인 나에게 언니는 하나하나 영어로 해석하고 알려주었다. 반에서 유일하게 같은 아시안 여자여서 그런지 급격하게 친해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서로 인스타 팔로우를 하고, 다음 주 수업 후에 함께 놀자는 약속까지 했다. 세부 어학연수 이후 내 생에 두 번째 대만 친구가 생겼다.
사실 태국어는 아직도 더듬 더듬이라 선생님의 집중 교육 대상이긴 하지만,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들 덕분에 태국어가 좋아지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가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할 때면 반 친구들이 따뜻한 눈빛과 함께 유캔두잇!이라 외쳐준다. 오늘은 태국어 복습, 내일은 태국어 수업, 다음 주는 대만 언니와 밥 먹기. 치앙마이 생활이 조금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