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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08. 2024

내향형 인간의 혼자 하는 여행



 혼자 있는 게 좋다고 말하고 다녔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휴식이 아닌 끝내야 할 일처럼 느껴지고, 간혹 약속이 취소되면 하루 종일 갑갑한 브래지어를 착용하다가 집에 와 버클을 풀을 때처럼 상쾌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와의 만남 후에는 무조건 다음날 온종일 집에서 휴식을 해야 했으며, 일을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래의 나에게 토스했다. 그냥 언젠가 마음이 편안한 날 아무 때나, 보고 싶을 때 만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내일의 출근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뒀다.



 치앙마이에 도착해 철저하게 혼자가 된 지 오늘로써 딱 2주가 되었다. 도피생활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마치 이승에 미련이 남아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는 한 많은 유령처럼 목적 없이 배회하고 있다. 하루 중 목소리를 내는 일이라곤 식당에서 주문할 때, 자기 전에 남자친구와 보이스 톡으로 잠시 하는 전화뿐이다. 내가 원한 게 이렇게 사는 거였나 하는 고민과 함께  따분한 마음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들리는 한국어에 괜히 반가운 마음으로 눈빛을 보내는 내 모습을 보니 그렇게 혼자가 좋다고 다녔는데 우습게도 슬슬 권태와 외로움, 그 비슷한 게 조금씩 차오르고 있나 보다.



 이제는 굳혀진 나의 아침 루틴으로 일어나자마자 향하는 숙소 옆 카페에는 안경 쓴 여직원이 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 직원은 매일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한다. 지난주 내내 와본 결과 그 친구는 일주일에 하루만 쉬고 나머지는 출근하는 것 같았다. 일요일인가 보이지 않았던 날에는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처럼 매일같이 발 도장을 찍으니 얼마 안 가 그 직원은 내가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MBTI로 따져 말하면 나는 I인 내향형이다. 그리고 내향형 인간이라는 것에 완전히 동의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 단둘이 남겨져 있을 때 어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뱉고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한 가게의 단골이 되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면 그 가게를 다시 가지 못하는 병이 있기 때문이다.



 카페 직원과의 대화는 오로지 ‘사와디카’, ‘코쿤카’ 뿐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사와디카’ 인사하고, 뚝딱 커피를 만들어주면 또 ‘코쿤카’ 인사하며 카페를 나온다. 굉장히 간편하고 효율적인 그런 사이,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고 서로의 목적만 빠르게 달성해 주는 암묵적인 파트너… 그런 느낌의 사이. 그러던 중 직원이 오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전기공사를 해서 에어컨이 안 나와. 여기 조금 더울 거야.”

“아 그래? 괜찮아.”

“근처에서 지내니?”

“응. 카페 바로 옆에”


 빠르게 만들어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덕분에 평소와 같이  ‘코쿤카’로 대화는 끝이 났다. 이전 한국에서의 나는 이런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물꼬를 튼 한 번의 대화는 곧 올 때마다 가벼운 스몰토크를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면 나는 또 아무 말이나 하게 되겠지 하는 지레 겁먹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지 못했는데, 오늘은 왠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낯선 이곳에 아는 사람이 생긴 것만 같았다.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방에 감금되는 게 제대로 된 휴식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2주간 지내다 보니 이따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남자친구가 생각나고, 예쁜 풍경을 보면 엄마, 아빠가 생각나고, 축제의 현장을 보면 친구들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외치던 혼자가 좋다고 한 말들은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잡아줄 주변의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다닐 수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사실은 주변에서 내가 외롭지 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줬다는 걸,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조금씩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여행은 그렇다. 평소에는 애써 무심하게 넘긴 마음들이 여행을 핑계 삼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밤이고 방금까지 비가 내렸었다. 빗소리가 멈추니 생때같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던, 빗소리에 가려졌던 개굴개굴. 오늘 밤은 자장가로 들어야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카페 직원의 이름을 물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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