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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08. 2024

부지런한 치앙마이와 게으른 여행자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난처할 때가 있다. 가령 구글 지도에 하트 표시를 해둔 음식점을 찾아갔는데 닫혀있을 때 같은 경우 말이다. 하트 하나만 보고 낯선 동네까지 걸어와 블로그에서 미리 보고 정해둔 메뉴들을 주문해 익숙지 않은 맛을 혀로 느껴보고 싶었는데, 셔터가 닫힌 가게를 마주하니 풍선처럼 부풀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쪼그라든다. 이 동네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 가게 하나여서 그 존재가 없다는 걸 알아챈 후로 갑자기 주변이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특히나 여행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 동네에서는 더욱 움츠러든다. 여기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에 비집고 들어와 동네와는 맞지 않는 어리둥절한 존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코인 세탁방에서 밀린 빨래를 하는 여학생, 가판에서 꼬치를 판매하며 동네 이웃과 수다 떠는 아주머니, 하얀 메리야쓰만 입고 집 앞에서 세차하는 아저씨,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옆에서 담배 피우는 청년. 여기서는 나 홀로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글 지도를 다시 켰다. 분명 오픈이라고 되어있는데…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 정확히 적어놔야지 하며 괜히 볼멘소리를 한다. 사실 구글 지도를 수정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닐 텐데 말이다. 어차피 가게를 자주 찾아오는 손님은 빨래하는 여학생, 꼬치 파는 아주머니, 세차하는 아저씨, 담배 피우는 청년일 테니. 그들은 그 가게가 몇 시에 열고 닫는지 어련히 알고 있으니 잠시 찾아오는 여행객을 위해 굳이 시간을 정확하게 수정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치앙마이의 음식점과 카페는 이른 아침인 7~8시쯤 오픈해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 곳들이 많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더운 날씨의 영향으로 선선한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또한 태국은 외식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하여 이른 아침부터 가판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부지런한 치앙마이 덕분에 나는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다. 내가 구글맵에 하트 표시를 해둔 곳들은 대부분 오후 3~4시면 문을 닫아 조금만 지체해도 선택지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 하루의 시작은 이렇다. 9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몽롱한 정신을 깨우며 숙소로 돌아와선 지난밤에 쓰지 못한 일기를 뭉그적거리며 간단하게 끄적인다. 아무래도 아침이라 팔에 힘이 없어 길게 적지는 않는다. 단지 어제 뭘 했는지 정도만 짤막하게 기록한다. 그 뒤 오늘 하루는 뭘 할지 생각하며 창문 밖으로 펼쳐진 초록 풍경을 보며 멍을 때린다. 가끔 나무에 새가 날아와 앉아 있으면 그 새를 관찰한다. 그러면 불현듯 새의 종류가 궁금해져서 구글에 검색해 본다. 태국의 새. 포털 사이트에 적혀있는 여러 종류의 새 이름들을 하나씩 클릭해 내 눈앞에 있는 새와 비슷한 얼굴을 찾는다. 저 노란 부리를 가지고 있는 쟤는 구관조구나. 사람의 말을 잘 따라 한다니, 나보다 태국어를 더 많이 알고 있겠네. 어제 들렸던 귀여운 울음소리가 너였니? 유튜브에 구관조 울음소리를 검색해 본다.



 한참을 검색의 검색으로 딴 길로 새다 아차 하며 다시 오늘 뭘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보면 배가 슬슬 고파지는데 일단 점심 메뉴 정하기로 목표를 바꾼다. 국수는 어제 먹었으니 쌀을 먹고 싶은데, 밥 종류가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제일 무난한 건 팟카파오무쌉(다진 고기와 바질을 볶아 만드는 돼지고기 덮밥)이 낫겠지. 어디 가서 먹을까. 이때쯤이면 시간은 이미 정오를 지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준비해서 나가지 않으면 내가 갈 수 있는 식당의 선택지는 적어질 것을 알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외출 준비를 한다.



 가방에는 아이패드와 책 한 권, 그리고 지갑을 넣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 목표는 걸어서 17분 거리에 위치한 팟카파오무쌉 맛집으로. 하지만 뜨거운 태양 덕에 나의 최후는 맛집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흐르는 땀을 맨손으로 훔쳐 가며 결국 가는 길에 있는 이름 모를 식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치앙마이의 메뉴판에는 대부분 음식 사진이 함께 있어 친절하게 느껴진다. 제일 익숙한 사진으로 주문 후 한화로 채 3000원이 되지 않는 점심을 만족스럽게 먹는다.



 오후 6시까지 하는 카페를 찾아 들어가 망고 스무디를 주문한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들고 온 책 필사를 하거나 아이패드로 글을 조금씩 끄적거린다. 글재주는 없지만 뭔가를 쓰고 싶은 욕심은 있기에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주절거린다. 그럼 어느덧 마감시간에 가까워지는데 그때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실 음료 하나를 더 주문한다. 모든 만물들을 태워 죽일 기세였던 태양도 저물어가면서는 힘을 잃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손잡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한다.



 저녁은 푸드판다로 결정했다. 푸드판다는 우리나라의 배달의민족 같은 어플인데 최소 주문금액이 적어 부담스럽지 않고 간편하게 저녁을 때울 수 있다. 오늘은 제육덮밥으로 정했다. 배달이 오기 전에 아까 뿜어낸 끈적한 땀을 씻겨내고 보송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배달이 오면 어제 편의점에서 사 온 창 맥주를 꺼낸다. 서향 숙소의 장점은 실시간으로 하늘의 퇴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붉은빛 하늘을 보며 나의 하루도 조금 일찍 마무리한다. 어설픈 고민과 함께.



 내일은 또 뭐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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