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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08. 2024

분명 잘 먹는데도 살이 빠지는 이유

치앙마이... 나랑 잘 맞네?

 치앙마이에서는 신기하게도 아침 7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10시면 눈꺼풀이 내려왔다. 퇴사 후 한국에서의 저녁은 대체로 눈이 아플 때까지 핸드폰을 부여잡곤 했다. 내일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을 질질 끌었다. 새벽 5시가 넘으면 창문에서 파란빛이 들어왔다. 그때쯤이 되어서야 퉁퉁 부운 눈에게 감길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오후 1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 루틴들이 나를 건강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까지 나는 나의 아까운 하루들을 이렇게 낭비하곤 했다. 그리곤 웃기지만, 치앙마이에선 건강하게 살 거야! 요가도 하고, 건강한 음식들을 마구 먹으며 디톡스를 해야지 다짐했다.




 치앙마이와 한국은 2시간의 시차가 있다. 한국이 저녁 10시 일 때 치앙마이는 저녁 8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드는 내가 새벽에는 잠들 수 있겠구나. 그렇게 다시금 나의 루틴을 되찾아오자고 다짐했다.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잠이 쏟아져왔다. 고작 저녁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타국으로 내딛기 위한 용기와, 숙소까지 가는 길의 묘한 긴장감, 그리고 잠시나마 헤어진 주위 사람들에 대한 허전함이 숙소에 도착하니 안정감과 함께 노곤함으로 바뀌었다.




 어서 배를 따뜻하게 채운 뒤 바로 눕고 싶었다. 치앙마이 필수 어플들을 미리 다운 받아온 나는 어색하게 ‘푸드 판다’ 어플을 켰다. 아직은 낯선 태국어들 사이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후기와 별점뿐이었다. 2000개가 넘는 후기를 보유한 어느 한 식당에서 팟타이와 윙봉을 주문했다. 태국에 왔으니까 당연히 팟타이를 먹어야 했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음식이라곤 그거뿐 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첫 고객은 딜리버리 프리라는 문구와 한화 3000원도 되지 않는 팟타이를 보며 역시 치앙마이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배달은 20분도 안 돼서 숙소에 도착했다. 조금만 환전해 온 바트 중 100바트짜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 라이더에게 인사를 했다. 첫날이니 얼마 안 되는 잔돈은 팁이라며 쿨한 인사를 한 뒤 나는 조용한 내 방에서 홀로 치앙마이 환영 파티를 했다.




 알람 없이 일찍 일어나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제의 파티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눈꺼풀이 감겨 예상보다 일찍 종료되었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목욕을 하고 10시쯤 잠들어 눈을 뜨니 아침 6시였다. 6시에 일어났는데 이렇게 개운해도 되는 걸까? 오버를 보태서 말하자면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그만큼 정신이 깔끔했다. 나의 좋지 않았던 생활습관이 이 날 이후 바로 바뀌었다. 조금의 노력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10시 취침, 6시 기상이 습관인 사람처럼 자연스레 체득되었다. 나는 이걸 치앙마이의 환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여기서 나태하게 살지 말고,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열심히 살아보렴. 하면서 선사해 주는 생활습관이라고 말이다.




 갑자기 생겨버린 나의 능력 덕분에 나는 치앙마이에서 꽤 바른 하루를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상 후 두 시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곤 했다. 눈 뜨자마자 심신이 안정되는 창문 밖 그린 뷰를 몽롱하게 바라보다가,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어느새 8시가 지나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치앙마이가 좋은 능력을 선사해 줘도 원래 하던 사람이나 잘 사용하지 싶다. 게으른 나는 뒹굴거리는 시간이 아침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나태한 건 변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얼굴 때깔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에서 꽉 맞던 바지가 스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운동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어딜 잘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밖에서 조금 걷다 보면 에어컨 빵빵한 나의 숙소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빠르게 돌아오곤 했으니. 하지만 한국 생활과 유일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야식과 술이었다. 친구 없이 홀로 지내오다 보니 저녁까지 밖에 있을 일이 적었다. 또한 편의점이 꽤 멀어서 술을 채워놓는 것도 가끔 있는 일이 되어 버렸다. 차가 없으니 맥주가 든 무거운 봉투를 들고 10분 이상을 걸어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귀찮음이 알콜의 욕망을 이겼다. 게다가 태국음식을 알아가는 중이라 아는 음식들이 많이 없었다. 야식이라 함은 매콤한 국물 닭발이나, 갓 튀겨진 바삭한 치킨, 또는 야채와 당면이 한데 어우러진 곱창을 주로 선호하는 나였다. 그러니 저녁밥을 먹고도 무언가 더 먹고 싶을 정도의 유혹의 메뉴가 치앙마이에서는 없었다.




 나는 이것 또한 치앙마이의 환대라 부르기로 했다. 외출을 하면 자연스레 흘리는 땀과, 저녁 10시만 되면 감겨오는 눈, 야식의 욕망도 없으며, 친구도 없어 자연스레 단주를 하는 삶... 낯빛이 밝아지며, 바지가 흘러내리고, 꽉 맞던 반팔티가 헐렁해져 핏이 꽤 힙해졌으며,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이 떠지고 오늘은 또 뭘 해야 할까 나른한 고민의 하루들. 나의 치앙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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