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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20. 2024

생에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겼다

늙은 나의 본가, 연립 벗어나기 프로젝트


 2020년 3월. 나는 전부터 원하던 업종의 회사에 입사했다. 본가에서 차로 40분, 대중교통으로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나는 출근을 기회삼아 독립을 결심했다. 부모님께 나의 계획을 미리 말해봤자 돈도 없는데 무슨 출가냐며 무시할 걸 알기에 조용히 진행시켰다. 수중에 있는 500만 원을 가지고 월세 방을 찾아다녔다. 나에게 필요한 건 단 한 칸의 방이었다.



 나의 본가는 준공한 지 60년이 넘은 노후된 연립주택이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은 ‘연립’이 뭔지 모르기도 해서 우리 집 주소를 말할 때면 창피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 집은 우리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노후를 위해 사둔 집이었다. 외할머니는 연평도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갖은 일을 하다 외할아버지를 만났다. 외할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집안이었고, 연평도 섬 소녀였던 할머니와의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고려대학교를 나오고 유학도 다녀왔다.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의사였다고 하니 그 시대에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할아버지에게는 부모님이 미리 정해준 정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없는 할머니와 사랑에 빠져버려서 지금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사랑의 도피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엄마와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는 다정하고, 똑똑하고 다 좋은데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고 말이다. 결국 우리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소담하게 겨우 딸 한 명만 낳고 이 작은 연립에서 욕심 없이 살았다. 나 또한 엄마에게 종종 말한다. 엄마도 너무 세상물정을 몰랐다고 말이다. 엄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었던 아빠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를 낳아버렸고, 나를 키우는 동안 전세 사기를 당해 다시 이 연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연립 주택은 방이 세 개인데, 그중 두 방은 하나로 이어진 형태다. 현관과 가장 가까운 독방은 할머니, 할아버지 방, 그리고 이어진 큰 두 방은 엄마, 아빠, 나, 그리고 남동생이 함께 썼다. 나는 성인이 된 후로도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바로 옆에서 아빠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나의 공간이 있을 수가 없는 형태였다. 모든 게 공유되는 집, 사생활이 없는 공간은 사춘기 시절에는 감옥 같기도 했다. 집으로 들어와도 안락함이 없었다.




 엄마 아빠는 자리를 잡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고작 스무 살, 스물한 살짜리 어린 성인 둘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게 어떻게 무탈할 수 있을까. 그러니 나의 부모님도 이일 저일 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우리는 이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근처에 저렴하게 나온 집이 있는데 다 같이 그곳으로 가자고 말이다. 나는 너무 신이 났다. 드디어 내 방이 생기는 건가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그 기대를 기점으로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아파졌다. 다리가 굳어가고 있었다. 자식들에게 기대기 싫어하는 할아버지는 본인의 몸이 불편해도 도움을 받기 싫어했다. 혼자 일어나 절뚝이다 몇 걸음 가지 못해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 아무도 없는 날에는 홀로 덩그러니 거실에 쓰러진 채 소변을 지리기도 했다. 할아버지에게 제발 혼자 일어나지 말라며 사정해도 끝까지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려 애썼다. 그러다 결국 다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틴 근육들이 다 죽었을 때 비로소 할아버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봤다. 가끔 나를 불러 자기를 한 번 일으켜 달라며 손을 뻗고 사정했다. 그저 화장실 한 번만 가게 해달라고. 엄마가 기저귀 채워놨으니 그냥 싸도 된다고 말하려다, 할아버지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 손을 붙잡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다리는 이제 다 그을려버린 장작 나무처럼 바사삭 부서질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상하게도 엄마 아빠의 사업이 잘되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다. 이사에 관한 이야기가 한 번 더 진지하게 나왔다. 우리는 할머니에게 말을 했다. 함께 이사를 가자고. 하지만 할머니는 언성을 높였다. 이곳은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이고, 자기는 여기를 떠나지 못한다고, 갈 거면 너네나 가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우리 가족의 연립 벗어나기 계획은 그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할머니 또한 건강하지 못했고, 하나 있는 딸인 우리 엄마는 할머니를,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연립에서 도무지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는 500만 원을 모은 그제야 독립을 실행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멋있게 통보하고 싶었다. 나 회사 취업했고, 그 근처에 방도 계약 했어! 하면서 말이다. 회사 근처에 있는 집들을 싹 돌아봤다. 그중에 가장 컨디션이 좋은 방을 발견했다. 500/36, 원룸인데 주방이 따로 빠져서 다른 원룸보다 깔끔했다. 또한 회사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나는 방을 보자마자 계약을 진행했다. 부동산 계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장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벽지가 파란색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느낌이 있었다. 나는 파란 벽지를 볼 때마다 이곳이 하늘 같았다.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해 날아온 시원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곳은 나의 작은 하늘이었다. 10평 남짓한 이곳을 나의 취향대로 채웠다. 베이지색 러그와 체크무늬 침구, 랜디 제라늄과 주홍색 칼란디바.


 태어나 처음이었다. 나의 취향대로 방을 꾸미는 것이 말이다. 나는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한 두 개씩 채워지는 새로운 물건들을 보며 알 수 없는 충족감이 몰려왔다. 이전에 하지 못했던 행위를 하는 기분은 감히 짜릿했다. 나의 결핍들을 채우기 위해 오늘의 집 어플을 하루에 몇 번이고 들락날락거렸다. 내 눈에 예쁜 식기나 협탁 등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구매했다. 그러다 보니 집이 정신없는 오합지졸처럼 돼버리기도 했다. 인테리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나의 제각각 취향들이 정신없이 놓였다. 처음은 모든 서툰 거니까. 그럼에도 나는 내 작은 집이 마음에 들었다. 해가 질 때 짧게 들어오는 나른한 햇빛, 이 동네에서만 나는 낯선 냄새, 새 집 냄새, 내가 만든 어색한 요리의 향기들이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현재까지 햇수로 5년째 독립생활 중이다. 하늘색 작은 원룸에서부터 복층 오피스텔, 그리고 지금은 방 세 개짜리 작은 주택에 홀로 살고 있다. 혼자로 시작해 남자친구와 동거, 그리고 다시 혼자. 나의 5년은 서툴었던 하루들과,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아름다움이 남아있다. 이제야 나의 진정한 독립이 시작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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