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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22. 2024

엄마 왜 울어?

자식을 독립시키는 부모의 마음이란



 나의 독립의 시작은 매우 정신이 없었다. 새로운 회사의 적응과 함께 이뤄졌기 때문이다. 배우고 습득해야 하는 것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나의 늙은 본가, 연립에서는 요리를 자주 해 먹지 않았다. 60년 전 지어진 연립은 주방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공간이었다. 주방이란 말은 뭔가 현대적인 느낌이다. 그러니 나는 우리 집 주방을 부엌으로 부르곤 했다. 세월과 함께 낡아간 부엌은 리모델링도 하지 않아 내가 초등학생 때 지낸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집에서 무얼 해 먹는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10년이 넘는 장사 생활로 새벽녘에 들어오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주로 배달음식이나, 편의점 음식, 또는 친구들과 밖에서 먹고 들어오기 일쑤였다. 덕분에 가장 예쁠 나의 20대 초반은 붉은 여드름과 통통한 몸매를 쉽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렇게 나의 공간이, 나의 주방이 생기다 보니 요리를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개나리 색 주방에는 채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예컨대 김치볶음밥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프라이팬과 즉석 밥, 김치, 간장, 설탕, 참기름, 계란, 식용유를 구매해야 했다. 남은 김치를 찌개로 만들기 위해 냄비, 돼지고기와 다진 마늘을 사야 했고, 가끔 유튜브 브이로거들처럼 자취생의 감성 집밥을 만들기 위해 예쁜 그릇과 파스타 면, 소금, 파스타 소스, 아보카도, 나또, 스팸을 구입했다. 처음으로 나를 대접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배달음식으로 채웠던 내 몸을 예쁘고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들로 채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가꾸는 일은 그만큼 돈이 드는 일이었고, 아무것도 없던 나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월세보증금 만한 소비가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었다. 방을 계약하면서 큰 산 한 개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생각보다 더 큰 산의 초입일 뿐이었다.


 자취를 시작하면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요즘 친구들처럼 감성적이면서 깔끔한 일상을 살고 싶었다. 하나둘씩 집안 살림이 늘어가면서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을 때 엄마와 아빠를 초대했다. 엄마는 나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했다. 여기서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물건을 많이 들여놨어. 그냥 필요한 것만 사야지. 이 커피머신은 뭐야. 꽃들은 왜 이렇게 많아. 책장은 또 왜 샀어...... 으악!



 엄마의 입을 봉쇄하기 위해 집 근처 횟집으로 데리고 나왔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집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자 덕분에 친구 같은 부모님과 나는 종종 소주를 마신다. 대부분 고민상담을 하고, 서로 사는 얘기를 하다가 옛날 얘기까지 나오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네가 잘못했네, 엄마가 심했네 하며 술자리가 파투 되는 마무리지만. 오늘도 그런 낌새가 조금씩 보였다. 돈을 더 모아서 전세로 가야지 월세 살아서 돈을 언제 모을래부터 시작하여 네가 나가니까 집이 깨끗해졌다면서 속 시원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내 원룸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을 보고 처음에 놀랐다고 한다. 집에서는 매일 돼지우리처럼 해놨다면서 얄미운 마음도 내비쳤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깔끔해야지. 이게 원래 나야. 으쓱대며 말했다.




 소주가 세 병이 되고, 네 병째 뚜껑을 오픈하니 우리의 얼굴은 점차 붉어졌다. 벌게진 얼굴로 엄마는 나에게 꼭 나가야 했냐며 나무랐다. 이런 먼 곳까지 와서 일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오늘 본 나의 모습이 바짝 말라 있는 것까지 마음 아파했다. 이곳에 정착하면서 전보다는 건강한 음식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몰골이 좋아졌다. 속도 더부룩하지 않았고, 회사 덕분에 일정하게 몸을 움직여 부기도 많이 빠졌다. 나는 지금의 내가 만족스러운데, 엄마 눈에는 집 나가 잘 먹지도 못하는 가여운 딸의 모습으로 보였나 보다. 아빠가 옆에서 말을 보탰다. 네가 나가고 엄마가 외로워해.



 엄마의 성향은 istp로 꽤 무신경한 사람이다. 엄마는 입이 무겁고, 남들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 그게 나쁜 이야기든, 좋은 이야기든. 뱉은 말들은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온다는 신념이 있는 엄마다. 그러니 아빠와 싸운 이야기, 재밌었던 이야기,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자신의 속 풀이를 오로지 딸인 나에게만 했다. 중학생 때부터, 그러니까 엄마와 나누는 대화에 티키타카가 됐던 그 순간부터 엄마는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냈다.  20살 차이가 나는 우리 모녀는 그저 친구와도 같았다. 입이 무거운 엄마에게 나는 엄마만의 비밀창구였다. 그러니 나의 독립이 엄마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일과 같았던 것이다.




 부모님과 내 방에서 가볍게 맥주로 2차를 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다. 아빠가 겉옷을 입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나도 함께 낡은 연립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어릴 때의 나의 모든 서사가 담겨있던 공간, 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반겨주었던 그곳. 매일 밤 남동생과 피 터지게 싸우다가도 치킨 한 마리 시켜서 디지몬을 보며 금세 잊었던 우리의 방, 리모컨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였던 순간, 컴퓨터 한 대를 시간 재며 사용 했던 치열한 추억. 막내 동생인 강아지가 거실 한편에 앉아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집.



 가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사무치는 감정이 올라왔다. 나는 부모님 앞에서 최대한 씩씩한 척을 하기 위해  애써 얼른 가라며, 너무 졸리다고 건조한 말들을 툭툭 뱉었다. 그 순간 신발을 신던 엄마가 다시 돌아와 나를 푹 껴안았다. 알코올 냄새가 진득하게 베여있는 엄마가 내 어깨에서 울었다. 우리 딸, 하고 부르며 나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엄마의 눈에서 투명한 방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웃었다. 엄마 취했네. 아빠, 얼른 엄마 데리고 가. 뒤에서 나와 엄마를 보고 있던 아빠는 지갑에서 십만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엄마를 데리고 낡은 연립으로 돌아갔다. 시끌벅적했던 나의 원룸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금 고요해졌다. 나는 손에 오만 원짜리 두 장을 꽉 쥔 채로 엉엉 울었다. 그날은 왠지 서럽고, 공허한 밤이었다.



강아지 맹이를 핑계삼아 나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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