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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27. 2024

몬스테라처럼 성장하기

청소와 삶의 상관관계


 자취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들에게 소식 알리기였다. 집에 놀러 오라며 초대장을 이곳저곳 뿌려댔다. 자취 초기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몰려왔기에 주말만 되면 친구들을 불렀다. 서너 명이면 꽉 찬 우리 집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들 사이에선 자취의 선도 주자로서 비교할 대상이 없었으니 어린 날의 우리는 그 좁은 집에서도 부족함 없이 놀았다.



 아마도 우리 집에 온 친구들의 첫 방문날이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2주간 필요한 살림살이들을 갖춰 놓았었다. 접으면 앉을 수 있고, 펴면 누울 수 있는 2인용 베드 소파와, 곡선이 들어가 있는 하얀 접이식 책상, 캡슐 커피 머신과, 여분의 접시들. 집 꾸미기가 너무 즐거운 한 때였으니 이만하면 당당히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손에 작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작은 디퓨저, 귀여운 머그컵, 휴지 등을 바리바리 사 왔다. 집들이가 처음인지라 나는 친구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나 또한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해 며칠간 뚫어 놓은 배달 음식 맛집들에 주문을 넣어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하 호호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 한 친구가 화장실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와서 “야 변기 너무 더러운데”라고 말했다. 알고는 있었다. 들어올 때부터 변기에 물이 차있는 만큼의 높이로 검은 줄이 쳐져있었다. 그래서 물탱크에 파란색 세정제를 넣어두었다. 물을 내릴 때마다 자연스럽게 지워지지 않을까 하고. 나는 나대로 해결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거 원래 그랬는데?”



 친구는 한숨을 쉬면서 닦으면 없어진다고, 너 진짜 집안일을 안 해봤구나? 하면서 꾸짖었다.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변기도 닦아야 하는 거였어?




 생각해 보면 본가에 살았을 때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매일같이 방을 쓸고 닦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했지만 화장실까지 청소한다고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엄마는 본인이 씻을 때 변기를 닦고, 머리카락을 줍고, 곰팡이를 제거하고, 물때를 박박 씻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는 나는 화장실은 자동으로, 몸을 씻으면서 나오는 비누 거품 등의 그런 화학 물질들이... 자동으로...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줄 알았지.



 이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스무 살 때부터 시작한 사회생활 덕분에 나름 인생의 경험치가 많이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진상을 만났을 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던가, 술 먹고 싸운 친구와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화해하는 법이나, 회사에 지각할 것 같을 때 써먹기 좋은 핑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을 청소해야 하는 법은 그때까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게 바로 독립의 민낯이었다.



 친구들을 보내고 난 뒤, 나는 지독하게 청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이소에 가보니 종류별로 청소용품들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곰팡이 제거제나, 변기 클리너, 거울 닦이 스펀지부터 시작해서 세탁기 클리너에 주방용 기름때 제거제까지.



 사실상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닦아주고 청소해야 하는 것이었다. 독립이란 결국 잘 청소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다. 변기를 솔로 박박 닦고, 수챗구멍이 가득 엉켜있는 머리카락을 빼내어주고, 세면대와 거울에 남아있는 물때를 제거해야 하고, 샤워 후에는 문을 열어놓아야지 곰팡이가 덜 생긴 다는 것. 설거지를 하면 주변에 튄 물과 거품들을 싹 정리하고, 요리하고 난 뒤에는 가스레인지 주변을 쓱싹 닦아야 하는 것.



 오래 머물지도 않는 집에 매일같이 쌓이는 먼지들과 어디 구석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먼지 뭉텅이들, 돌돌이로 밀어도 밀어도 돌아서면 계속 보이는 지긋지긋한 머리카락들 까지. 친구의 말 덕분에 나는 청소를 공부했다. 사실 모르고 살았을 때가 더 살기 좋았다. 보이지 않으면 신경 쓰이지도 않지, 보이기 시작한 후부터는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집에서는 머리 묶고 있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마, 엄마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화원에서 작은 몬스테라를 하나 분양해 왔다. 몬스테라는 식물 중에 가장 키우기 쉬운 종에 속한다. 인테리어용으로도 적합하고, 딱히 많은 마음을 오래 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훌쩍 자라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나 또한 훌쩍 자라 버린 대형 몬스테라가 된 기분이다. 얕고 여렸던 나의 뿌리들이 어느새 흙 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내가 살아가야 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 흙 속에서 말이다. 천천히 영양분을 체득하고, 선선한 바람을 맞고, 은은한 햇빛을 받으니 나도 모르는 새 단단한 몬스테라가 된 것처럼.



 청소와 삶의 교집합에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다는 마음이 들어있다. 먼지 구덩이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매일 방을 쓸고 닦는다. 가끔 오는 친구들에게 창피당하지 않도록 화장실을 반짝반짝 청소한다. 이불 빨래 후 포근한 침구에서 잠이 든다. 이 모든 귀찮은 일들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3개월 만에 훌쩍 자란 나의 몬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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