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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니 Feb 29. 2024

독립하자마자 생긴 남자친구?

남자친구는 죄가 없다



 본가에서의 독립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지만 대체로 외롭게 했다. 시끌벅적한 하루들이 희미해지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소리, 자동차 소음들로 방 안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에 따분한 시간들이 몰려왔다. 나는 주로 티브이나 유튜브를 보거나 독서로 시간을 채워갔다. 나는 이 고립된 시간들을 좋아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긴 하지만 만날 수 없음에 어쩔 수없이 책을 펼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왠지 조금은 멋진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나 자신과 친해져 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외로움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지만 또한 새로운 사람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집에 돌아가면 가족들이 있고, 매 주말마다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던 시간에는 내 인간관계에 부족함이 없던 터라 누군가를 만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본가에 살 때도 연인을 만나긴 했지만 딱히 오래간 적이 없었다. 주말에 둘이 만나면 어색한 그 사람 보다 마음 편한 친구들을 보는 게 더 좋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홀로 살림을 들여놓으니 이 동네에서의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전처럼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의 부재로 인해 내 마음에는 사람에 대한 공석이 조그맣게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 아는 오빠한테서 연락이 왔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보자고 말이다. 이 오빠 또한 원래 살던 동네에 사는 오빠라 이사해서 너무 멀다고 하니 흔쾌히 내가 사는 곳까지 오겠다고 한다. 귀찮음 반과, 심심한데 나갈까 반이었다. 결국 금요일 퇴근 후 나는 그 오빠를 만났고, 오빠는 고백했고 나는 받아줬다. 지금의 남자친구에게 하는 말이 있다. 오빠는 정말 타이밍 좋았던 것 같다고 말이다. 나에게 호감이 있는 걸 전부터 내심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 한 사람이다. 그땐 누굴 만날 마음이 없었으니까. 내 남자친구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고백에 성공했다. 사람은 마음이 연약해질 때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있는 법이다.



 독립을 하자마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차마 부모님께 할 수 없었다. 독립을 실현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후였단 말이다. 엄마에겐 한 번도 남자친구의 유무를 말한 적이 없었다. 스무 살 때 짝사랑 상대에 대한 고민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그 남자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남자가 무슨 한 번도 만나자는 말도 안 하냐면서 걔는 너한테 마음이 없다면서 자꾸 초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 뒤로 엄마에게 연애상담을 하지 않았고, 부모님께 알릴 정도로 오래 만난 상대도 없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모쏠 그 자체로 알고 있는데 독립하자마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면 억장이 우르르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오빠와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성실했다. 매 주말마다 내 동네로 와주었고, 평일 저녁 퇴근 후에 잠깐이라도 보고 싶다면서 왕복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얼굴만 잠깐 보고 가는 일도 수두룩했다. 내가 선택한 독립이었는데 나는 왜 남자친구가 오는 시간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외로움은 또한 본인에 대한 의지력을 감퇴시킨다.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꽤 건강했던 외로운 시간들이 남자친구를 만난 뒤로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될 뿐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독립, 일단 저지르고 본 독립은 나 자신을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렸던 나를(고작 5년 전이지만) 지금 와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남자친구를 만나지 말고 혼자 씩씩하게 살라고? 이건 아니다. 나는 현재 5년째 오빠와 잘 만나고 있으며 이 사람을 만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빠 덕분에 삶이 다채로워진 것에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니 남자친구는 죄가 없다. 다만 나는 애써 저지른 독립의 시간들이 내심 오빠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변했던 초기의 내가 안타깝다.



 사실 아직도 배워나가는 중이다. 연인에게 기대고, 의지하지 않고 홀로 씩씩하게 사는 방법을 말이다. 적당한 의지는 신뢰감을 증명하지만 처절한 의지는 나의 삶을 휘발시킨다. 하지만 결국 서로에게 좋은 방향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지 상대방에게 나눌 수 있는 마음도 커진다는 것인데, 서툴렀던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나 자신에게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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