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사라는 시에서 한무제는 기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마음도 많아진다고 노래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우리 세대의 스승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해질 무렵에 신나게 뛰어놀던 아이는
갑자기 기쁨의 절정 위에서 그때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인 엄마의 부재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느닷없이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나 두고 죽지 마”라고 말한다.
선문답 같은 아이의 말에 엄마는 “너 두고 나 절대로 안 죽어”라고 말한다.
국민학교 시절에 각별하기 그지없는 이모네 식구가 안양에 살았다.
그때는 토요일 오전에도 수업이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오전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집 현관문 뒤로 어린 사촌동생들의 울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모네의 방문이었다.
그렇게 토요일에 온 이모는 주말을 우리 집에서 보내고 다시 안양으로 돌아가곤 했다.
집으로 들어서서 이모와 동생들을 처음 본 순간 내 인사는 이모 안녕도 아니고 동생들에 대한 안부도 아니고 “이모 언제 가?”였다.
이모네를 만나는 기쁨보다 헤어질 상실감이 더 크고 두려웠다.
기쁘고 행복할 때 삼가고 겸손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 같은 겸양의 미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오면 힘들 때에도 그 시간이 지나갈 것으로 믿고 심하게 좌절을 한 기억도 없지만, 반대로 좋았던 때에도 마음껏 기뻐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화가 나도 표현하지 않고 참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고,
기뻐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며
내 감정을 세상의 잣대에 맞추어 사는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주말에 온 이모네 가족에 대한 추억도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보다는
헤어질 시간이 아쉬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가슴에 더 새겨져 있다.
벚꽃이 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찾아온 봄을 온몸으로 느끼고,
밤이 올 것을 두려워하지 하고 한낮의 햇살을 듬뿍 쬐며,
당신이 없어질까봐 당신을 놓칠까봐 두려워 하지 않고
이제는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 때문에 행복하다라는 말만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