꽌시학 개론
사람들은 흔히 중국을 꽌시의 나라라고 한다.
꽌시는 관계(关系)의 중국어 발음이다.
그런데 가족, 동료, 동향 같은 "관계"는 정적이고 고정된 느낌인데 반해 중국어 발음으로 꽌시가 되면 여기에는 위와 같이 정태적인 관계에 더해서 이해가 얽히는 역동적인 개념으로 변화한다.
즉, 우리가 중국인과 꽌시가 있다고 할 때에는 나와 관계가 있는 중국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주거나 아니면 불이익을 면하게 줄 수 있다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쓰인다.
즉, 꽌시의 공식은
꽌시=(관계+신뢰+시간) ± 이해관계
이다.
그런데 사람 사는 관계에서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전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일은 잘 없다.
특히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진정한 꽌시가 되려면 중국인에게 나 너한테 백억 벌어다 줄게, 너도 나한테 백억 벌어다 다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은 중국 내에서는 꽌시라는 말보다
이너 서클이라는 의미의 취엔즈(圈子)가 더 무게 있는 인간관계로 쓰인다.
취엔즈는 단순한 일방향의 꽌시가 상하종횡으로 전개되는 쌍방향의 윈윈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내가 중국 사람들에게 뭘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없으면서 중국은 꽌시만 있으면 다 되는 줄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법을 지키고 정상적인 통로를 통하는 것은 꽌시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절대로 잘못된 생각이다.
꽌시라는 현상을 부정하는 것도 중국에서 그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꽌시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우선은 내가 중국 꽌시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중국 꽌시에게도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며, 꽌시를 활용하기 전에 필요한 법률적,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생각을 해보자. 한국에서 띄엄띄엄 한국말을 하는 정도의 외국인이 한국의 법규는 제대로 지키지도 않고 한국인들과 어울릴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이른바 "꽌시"가 있는 한국 사람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골몰한다면, 그리고 그가 자신의 모국에서는 한국에 이른바 "꽌시"가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면 이러한 꽌시는 정상적이거나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한국을 모욕하는 일이다.
꽌시는 중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해, 불이익을 면하기 위한 예비적이고, 최후적이며, 보충적인 방법이다.
중국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들을 위한 간담회에서 중국 전문가라고 하는 대학 교수님 하나가 충고의 말씀이라고 중국에 가면 꽌시를 잘 만들어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중국 사람들, 관련 감독기관 사람들 만나면 우리 꽌시를 잘 만들어 봅시다. 이렇게 말하나?
모두에 꽌시는 관계에 이해관계가 스며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꽌시를 제대로 못 만드는 것은 꽌시의 기본인 중국 사람들과의 관계 만들기는 외면하고 이해관계의 취사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어느 유명한 기업가도 중국에서는 삼동관계가 중요한데 이는 동향, 동료, 동창 관계라고 했다.
우리하고 별반 다를 거 없다.
그럼 외국인인 우리는 어떻게 중국인과 관계를 만들 것인가?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중국 사업 파트너와 같은 고향이기는 어렵고, 같은 직장의 동료들이나 아니면 유학을 통해 조금이라도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방법을 찾는 게 좋다.
중국 기업들이나 변호사들이 대부분 고객인 필자도 로펌이라는 조직에 있다 보니 실적 압박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사건을 수임하는데 북경대 박사 출신이라는 것이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중국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것, 필자가 갑자기 위중한 병에 걸려 중국 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졌다는 고사가 중국 인민일보에 실린 적이 있는데 그러한 사실들이 모이고 쌓여서 중국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즉, 중국과 태생적, 본래적인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우리들은 후발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여기에 시간과 신뢰를 버무린 콘크리트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이 안타까운 것이 한국에 귀국한 다음에는 중국에서의 사제관계나 교우관계가 모두 단절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지금도 춘절, 추석 같은 명절에는 물론이고 반년에 한 번씩은 지도교수님에게 내가 지난 반년 동안 무슨 일을 했다는 것을 상세하게 알린다.
이런 시도들이 관계에 시간과 신뢰를 더하는 노력이다.
꽌시가 중국에서 생활하고 생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중국을 꽌시의 나라라고 꽌시에만 의존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것은 중국 전략을 필패로 이끌 것이다.
지나치게 내 이익만 보려는 꽌시는 결국에는 중국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상처를 입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절당할 수 있는 관계도 훌륭한 꽌시라는 생각을 가지고 순간의 이익에 희비 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