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가 3월 23일 저녁에 갑자기 천식 발작 증상을 보인다. 집에 상비해놓은 비상약으로도 증상은 완화되지 않았고 우리의 119에 해당하는 120도 호출이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에 가족들이 직접 차를 운전에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그러나 최근 상해는 코로나 감염자의 폭증으로 병원 응급실마저 봉쇄된 상황, 심지어 그녀가 일하는 종합병원과 같은 계열의 병원에서도 진료를 거부당하고 병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결국 그녀는 사망하고 만다.
중국의 경제 중심지, 의료시설이 중국의 어느 도시보다 잘 되어 있다는 상해에서 그것도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간호사의 이러한 죽음은 상해뿐만이 아니라 중국 전역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2022년 들어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중국 서안이 봉쇄되었을 때도 코로나 제로라는 엄격한 방역 정책을 취하는 상황에서 적시에 필요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해 임산부가 유산을 하고 심근경색 환자들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중국의 코로나 제로 정책은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출근하는 건물을 봉쇄하다 보니 병원 응급실까지 봉쇄되어 이러한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했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암 말기 진단을 받고 영국에서 상해로 돌아와 격리를 하던 유학생이 격리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특권의식이다. 특혜를 바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코로나로 확진된 다른 질병을 앓는 사람들에 대한 의료체계의 대응 문제는 비단 중국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초기 병원 진료가 거부되어 응급진료에, 출산에 고통을 겪었다는 안타가운 뉴스가 적지 않았다.
무려 2년이 가까운 기간 동안에 변이의 출현까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온 팬데믹 상황에 대해 그를 대하는 각 국의 태도는 제 각각이다. 발생 초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부터 거부한 서방의 여러 국가들, 코로나를 제로로 만들겠다며 국민들의 발을 묶어 놓는 중국, 그 가운데 어느 지점에 있을 것 같은 우리나라까지 펜데믹에서 곧 다가왔으면 하는 엔데믹까지 각 국은 코로나를 대하는 자국만의 인식과 상황에 맞춤 제작된 방역정책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생략한 채 사망률 등의 통계 수치의 비교를 통해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의 방역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나아가 여전히 하루 확진자가 30만 명이 넘게 나오고 수백 명이 사망하는 상황에서 방역이 성공했냐 실패했냐를 놓고 논쟁을 하는 자체도 몹시 어색하다.
코로나 방역의 성공 여부에 대한 판단은 간단하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방역 대책은 성공이고, 죽은 자들, 방역 정책으로 가게문을 닫고 길거리에 나 앉아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그 정책은 실패다.
방역의 성공이란 누군가의 시간표와 필요에 의해 우격다짐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먼 세월이 지나 지금의 팬데믹 기간 동안 사망한 분들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생업의 붕괴를 겪었던 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때 평가되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2020년 중국에 코로나가 폭증하는 시기 출입이 통제된 상해 루지아주이 지역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2022년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위와 같은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