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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5 결국 우린 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 분노 조절 장애들의 연애

by lune

전 에피소드를 읽고 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남자친구가 거짓말을 하며 야동을 즐겨온 일은 나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에게도 힘든 일로 자리 잡았고 그 일은 우리 둘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한 순간에 급류에 휩싸여 침몰하는 배처럼 그냥 그렇게 쉽게 가라앉고 만다.


종종 나는 남자친구에게 해주고픈 이야기나 공감 가는 인스타 릴스를 공유하곤 한다. 앞서 말한 거와 같이 가장 큰 관심사는 신뢰 회복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근데 남자친구는 그 내용이 불쾌하다 나에게 감정을 표현했었다. 본인도 그 내용을 알고 실천하고 있음에도 보내주는 나의 그 행동이 눈치 주는 것 같다며 하지 말아 달라 했고 나는 그 의도는 아니었지만 기분을 불쾌하게 했기에 다음부턴 공유하지 않겠다 하고 그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근데 일은 이제 여기서 시작이다.


어제 인스타 릴스를 같이 보던 중 '애정결핍'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애정결핍자의 특징을 정리해 놓은 릴스였는데 내용이 궁금하긴 하나 말의 핵심만 말해주는 것이 아닌 주절주절 이야기하길래 조금 뒤로 넘겨가며 3가지의 특징을 자막으로 빠르게 살피고 다음 릴스로 넘겼다. 그때 남자친구가 말했다. "왜 끝까지 안 봐? 너 같아서 찔려?" 그 상황이 어이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애정결핍이라 생각하며 살지도 않았고 그 영상을 내 얘기라 여기며 보지도 않았다. 근데 남자친구는 그 영상에서 소개하는 특징들이 나와 똑같은데 왜 안보냐 뭐라 하였다. 왜냐면 본인도 전에 자신이라고 내가 보내준 그 릴스를 보기 싫음에도, 불쾌함에도 끝까지 다 보았는데 왜 너는 안 보냐 이게 남자친구의 말의 요지였다. 그 핵심 감정은 '억울해'였다.


그런 남자친구의 말에 나는 화가 났지만 참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싸우기 싫었으니까. "내용이 궁금하긴 한데 말이 점점 길어져서 자막으로 훑어봤는데 혹시 계속 보고 싶었어?" 그런데 이 말에도 돌고 돌아 남자친구는 네 이야기니까 기분 나쁘고 찔려서 넘겼냐는 이야기만 반복하였고 결국 나도 폭발하였다.


남자친구와 연애 초 나는 남자친구에게 관심이 없었으면 없었지 있던 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어떤 정도였냐면 남자친구가 연락 4시간이 두절되어도 뭐 할 일을 하고 있겠지 생각하며 남자친구가 무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또 토요일 데이트 약속이 있던 그 주 목요일에 남자친구가 연락 와서 나에게 대뜸 얼굴 보고 싶은데 잠깐 만날까?라고 물었고 그때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어갔고 시험 기간이라 공부 중이었던 나는 토요일에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굳이 만나야 해?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친구에게 미안한 말이고 내가 들었으면 엄청나게 속상했을 말이다.) 그렇지만 현시점에 남자친구가 자잘한 거짓말들을 하다가 결국 나를 계속 속이고 가스라이팅을 하면서 은밀한 취미를 즐겨오고 그것에 중독되어 뇌까지 지배된 그 남자친구를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락 도중 갑자기 사라지면 어디 갔어?라고 물어보고 군대에서 폰 받는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왜 안 와?? 어디서 뭐 해?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씻으러 가는 시간도 서로 정해 15분이 넘어가면 혼자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또 나를 속이고 내 뒤통수를 치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 봐 불안해서 미쳐 돌아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딱 그 사건 이후이다. 그전엔 그러지도 않았다. 그럼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남자친구이지 않나. 근데 남자친구는 자신의 잘못임을 인지를 하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없었다. 오히려 "또 내 잘못이지?"라는 모진 말을 꺼내고 그 후 이어진 말들은 나의 목을 조르는 말들이었다. "예전에 네가 그랬지? 나는 너 말고 다른 좋은 여자 못 만난다고? 아니? 가스라이팅 하지 마. 세상엔 너보다 좋은 여자 널리고 널렸어. 너보다 좋은 여자 만날 능력 충분히 있어. 나는 그 생각 가지고 지금까지 연애하고 있었어!"라고 큰소리치던 남자친구의 말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지고 말았다. 평소 종종 내가 "나만큼 좋은 여자는 없을걸~?"이라는 말은 하긴 했다. 하지만 연인끼리 이런 자신감 넘치는 애교와 장난 어린 말들은 하지 않는가. 근데 남자친구는 그게 본인을 깎아내리고 내가 그를 가스라이팅 한다고 생각했는 모양이다. 어이가 없었고 우리의 연애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하자고 했다.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는 우리 둘이었지만 오늘은 그 화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모진 말을 뱉은 건 내가 아니라 그였다. 사실 항상 내가 더 많이 했는데 그 말들이 우리가 관계가 다시 좋아졌을 때 회복되지 못하는 말이고 그 말이라는 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걸... 좀 늦게 깨닫긴 했지만 지금에라도 알아서 실천하고 노력하고자 나는 그 모진 말들은 꺼내지도 않았다. 사실 머릿속에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남자친구는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내뱉고 정신이 돌아와서는 나에게 말했다. "화가 나서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했어 미안해.."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우리 엄마가 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어렸을 때부터 말해주던 말이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그 말은 어디론가 사라질 수 없다. 결국 나만 상처받는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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