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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도 Aug 05. 2021

퇴근 마렵다...?

신조어? 의미확장?

신조어라고 해야 할까, 의미의 확장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는 재밌는 표현이라 하겠고, 누군가는 눈살 찌푸려지는 표현이라고 한다.

우선 이 표현을 처음 본 사람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퇴근 마렵다’는 ‘퇴근이 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왜 ‘무엇이 하고 싶다’는 표현을 두고 ‘무엇이 마렵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먼저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마렵다 「형용사」

【…이】

대소변을 누고 싶은 느낌이 있다.     

예시)

뒤가 마렵다.

아이가 오줌이 마려운지 다리를 꼬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어 불가불 자리에서 안 일어나고 못 배기는 까닭은 제때가 되면 반드시 뒤가 마렵기 때문이다.≪조풍연, 청사 수필≫     


사전적 의미 그대로 풀어 쓰자면 ‘퇴근을 배출하고 싶은 느낌’ 정도가 될 텐데 이건 의도하는 바와 다르다.

이미 ‘마렵다’는 어느 정도 의미변화 내지 의미확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소변을 누고 싶음 → 무언가를 참기 힘들 정도 → 극도로 하고 싶음      


그럼 ‘마렵다’를 ‘극도로 하고 싶음’이라는 의미로 보고 다시 문제의 표현을 다시 보자.    

 

‘퇴근 마렵다’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조금은 와닿을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이 표현을 사람들은 왜 쓸까?     


나는 풍요 속의 빈곤에서 온 결핍에 대한 갈망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워서 손가락 하나만으로, 

먹고 싶은 것이든 입고 싶은 것이든 다 살 수 있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시간’, 

‘다이어트는 하고 있지만 맛있는 로제떡볶이’, 

‘휴대폰 꺼두고 떠나는 휴가’ 같이 쉽지만 어려운 것들이다.     


단순히 ‘하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한 것들.

그런 것들을 원할 때 ‘무엇 마렵다’는 표현을 씀으로써

본인의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는 게 아닐까. 

    

음... 이 표현을 쓰는 걸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여기까지 해두고,

정말 이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써도 될까?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답했다.     



안녕하십니까?     


표준 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마렵다'는 '대소변을 누고 싶은 느낌이 있다'의 의미로 풀이되며, 실제로도 '마렵다'는 이러한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점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쓰임을 자연스럽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언어는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며, 어떠한 표현이 확장적으로 사용되고 그 표현이 굳어져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현상은 비일비재합니다. 따라서 만일 말씀하신 문장에서처럼 '마렵다'의 의미가 계속해서 확장되어 쓰인다면, 언젠가는 그러한 의미가 표준어로 공인될 수도 있겠습니다하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용법을 완전히 인정하기는 어렵다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이쯤에서 다른 표현,

‘술 고프다’, ‘사랑이 고프다’는 어떤가? 


자연스럽다 못해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고프다’는 사전적 의미로는 ‘배’만을 주어로 하고 빈 뱃속을 채우고 싶어 한다는 의미이지만 확장된 의미가 상당히 안정적으로 정착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부정적인 의미를 더해주는 부사인 ‘너무’를 보자.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많이 사용되다 보니 국립국어원이 그 뜻풀이를 수정한 경우다.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해도 ‘정말 좋아요’라고 자막이 수정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좋아요’가 그대로 나온다.

말 그대로, 너무 좋다.     


반면에 ‘띵작’, ‘댕댕이’ 같은 야민정음은 서서히 쓰임이 줄어들고 있다.

급식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방송매체,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에서 

과도하게 사용하다보니 오히려 그 쓰임이 전소해버린 듯하다.


유행이라는 것은 소수가 시작을 하고 다수가 취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끝이 표준이 되거나 소멸하거나.     


과연 ‘무엇 마렵다’는 ‘너무’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하나의 유행에 지나지 않을지 궁금하다.     


무엇이 되도 재밌는 결과일 듯하다.    


      

추신 - 어쨌든 난 지금 퇴근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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