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일찍 퇴근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10분 정도?
하지만 내가 타려던 버스에는 더이상 자리가 없었다.
그리곤 꼬박 20분을 기다렸다.
내가 퇴근했을 때 세 정거장 전에 있던 버스는 이제야 내 앞에 멈췄다.
그래 뭐, 이 정도는 최악도 아니다.
2층 버스에 남은 좌석은 20개, 나는 14번째로 탔다.
앞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더니 보이는 자리는 하나.
내 앞의 할머니 자리는 되게 넓어 보였다.
아니, 실제로 넓어서 대신 내 자리가 좁아졌다.
그래 뭐, 이 정도도 늘 있는 일이니까.
근데 오늘따라 버스 냄새는 어제보다 더 역겨웠다.
비가 와서 그런가..
1시간을 열심히 달려 거점 정류장에 도착.
빨리 마을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겼던 몸을 버스에서 꺼내 최대한 펴주면서.
웬일로 마을버스는 금방 왔다.
정거장 2개를 지나는 동안 버스 안에 붙어있던 안내문구를 유심히 봤다.
‘버스가 멈추기 전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세요!!’
‘사고 시 절대 책임지지 않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릴 곳이 다가와 벨을 누르고 버스가 완전히 멈추기 전까지 앉아있었다.
하지만 버스는 멈추지 않고 속도를 줄이다 이내 다시 높였다.
“기사님, 내릴게요!”
라고 외쳤지만 이미 세우긴 늦었다고 다음 정거장에 세워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버스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일어났다.
또 앉아있다간 영원히 그 버스에서 못 내릴 수도 있으니까.
내리자마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우산으로 비를 열심히 막아봤지만, 어제 세탁소에서 찾은 패딩을 젖지 않게 할 순 없었다.
집까지 가는 길에 건너야 하는 신호등은 3개.
절묘하게 모두 풀카운트를 셀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10초 남았을 때 건너편에서 무단횡단하는 인간을 보니 환멸이 느껴졌다.
어쩌면 기대한 것이 사소한 최악이었을지도.
오늘따라 인식이 잘 되지 않는 지문인식 도어락의 시끄러운 경고음을 5번 정도 들으며, 엄지를 뗐다 붙였다 하고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올해 37번째 정도되는 사소한 최악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