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냥?똥냥 제 6화 라온이 이야기
EP 06. "내일 당장 데려갈 수 있는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보내려고요. "
라온이를 처음 본 것도 내가 자주 들락거리던 유기묘, 파양묘 분양 사이트에서였다.
라온이를 보고 입양하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을 때가 생각난다. 새하얀 공주님 같던 5개월 차 아기고양이. 입양 조건이 따로 있느냐고 내가 묻는 말에, 이런 답장이 돌아왔다. 다른 조건은 없고 내일 당장 데리러 올 수 있냐고.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사람에게 선착순으로 보내려고요. 가슴이 아팠다. 파양에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만, 내가 입양한 열 마리가 넘는 마리나 되는 개체 가운데서 가장 성의 없는 입양글이었고, 가장 성의 없는 태도였노라고 단언한다.
무성의한 태도는 만나서 아이를 데려오는 날에도 여전했다. 데리러 와야 한다 하여 이동장을 들고 분양자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집 앞까지 픽업은 아니었고, 아파트 단지와 조금 떨어진 도로가에서 약속이 잡혔다. 모르는 생판 남의 집에 들어가는 건 내게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만, 카페도 아니고 공원도 아닌,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변 아파트 앞쪽 길가가 만남의 장소라니. 마땅히 기다릴 데도 없었다. 길바닥 위에서 아이를 건네는 이들치고 그다지 아이에게 살뜰했던 적은 없었지만 역시나 싶어서 한숨이 나왔다. 비교적 이른 오전 시간대라고는 해도 날이 부쩍 더운 여름 날이었다. 분양자는 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조금 늦는다 하고 한 시간 넘게 나를 길바닥에서 기다리게 만들었다. 무성의한 태도를 지나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정한 곳과 조금 떨어진 벤치에서 책을 보며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내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이윽고 분양자가 말한 건물 앞쪽, 내가 기다리던 벤치 맞은편에 차가 멈췄다. 나는 이동장을 들고 다가갔다. 남자는 고양이를 목덜미를 잡아 내게 건넸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이동장에 넣으며 잘 키우겠다고, 종종 안부 남기겠다고 인사했다. 남자는 무심하게 네, 라고 대꾸했다. 아이에 대해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접종 여부 같은 상세 내역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저런 태도로 분양글을 올리고 약속을 잡아 아이를 데려온 게 외려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한 건가 싶기도 했다. 나도 오래 기다리면서 마음이 뾰족해지고 화가 나서 삐뚤어진 시각으로 상대를 본 점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 당시를 몇 번 회고해 봐도 아이를 나에게 버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파양을 버린다는 의미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뜻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내게 온 아이는 라온이였다.
전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꽤 긴 시간 동안 아이는 간혹 아주 가냘픈 목소리로 울었다. 긴 이동 시간이 미안했다. 아침은 먹였으려나. 아니 깨서 데리고 나올 때까지 물은 주었으려나. 화장실은 다녀올 수 있게 해줬으려나. 실제로 약속 장소로 나온 시간은 11시가 넘었지만, 애당초 약속 시간이 오전 시간이었대였던 만큼 깨자마자 어딘가 켄넬 같은 데에 줄곧 가둬두지는 않았을까. 내게 했던 무성의한 태도로 미루어 그랬을 개연성도 농후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달래어 가며 집으로 돌아와 나는 아이를 격리방에 두었다. 밥그릇과 물그릇을 놓아두고, 아이가 지치거나 아픈 구석은 없는지 눈으로 살펴보았다. 아이는 이동장 문을 열어두니 바로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사진보다 백만 배는 예뻤다. 특히 또랑또랑한 파란 눈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에게, 나는 라온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네가 이 집에서는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네가 아주 많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 즐겁다는 뜻 이름 그대로.
목이 말랐는지, 물보다 할짝이는 라온이를 바라보며 잘 도착했노라고 분양자에게 예의상 문자를 보냈으나 답장이 전혀 없었다. 연락을 원하지 않는 느낌이라, 그 이후로는 더 연락하지 않았다.
입양하여 2년이 지난 지금은 완연한 성묘가 되어 겨울 장식털까지 모피처럼 우아하게 두른, 흡사 여우 같은 느낌의 얼굴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진돗개처럼 터키쉬 앙고라의 순혈 같은 건 터키 밖에는 없다지만, 라온이는 분양글에조차 페르시안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페르시안 고양이인 아름이가 있었다. 나는 아름이의 탄생부터 성장 과정을 쭉 지켜보았기에, 라온이를 볼 때부터 페르시안이 아닌 것 같단 생각은 했었다. 아직 5개월 차 어린 냥이였지만 어딜 봐도 둥글둥글한 코비 체형인 아름이와 달리 늘씬하고 길쭉한 느낌이 라온이한텐 있었으니까. 그래서 믹스묘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본 터키쉬 앙고라와 라온이가 너무 닮아 있었다. 그전까진 짧은 털의 하얀 고양이가 터키쉬 앙고라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터키쉬 앙고라는 원래 긴 털의 장모종이라 했다. 자라면서 사람 손을 잘 안 타고, 고양이에게 상냥하고, 장난기 많고 체력이 좋고, 늘 텐션 업 되어 있는 상태인데, 한편으론 매우 예민하고 눈치가 백 단인 것까지 터키쉬 앙고라의 특징 그 자체라 점점 터키쉬앙고라의 피가 섞였겠거니 하게 되었다.
아무튼 성장 와중에 사람을 싫어하고 피하던 라온이도 몇 번 크게 아프고, 병간호해주는 와중에 내 손만은 잘 타게 되어 지금은 아주 사랑스러운 무릎냥이가 되었다. 언제나 엄마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늘 무릎에 기대어 누워 내 한 쪽 손을 안고 잠드는 사랑 많은 우리 라온이. 언제나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굴욕샷이라곤 없는 내 딸 라온이가 늘 지금처럼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눈처럼 하얀 터키쉬앙고라, 라온아.
나는 네 앞날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백설공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