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냥?똥냥! 제5화
05 캐터리에서 종묘로 살아온 호랑이 닮은 벵갈, 해랑이
뚱냥똥냥 5화
해랑이, 부산에서 데려온 호랑이 닮은 벵갈, 네 앞날이 태양처럼 빛나기를
우리 집 아이들의 상당수를 만나게 된 유기묘/파양묘 분양 사이트에 올라온 해랑이의 글을 본 건 재작년 초여름이었다.
솔직히 말해 첫눈에 반해 버렸다. 고양이는 다들 예쁘고 나름의 사랑스러움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어느 각도에서 봐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고양이는 처음 보았다. 타이틀에 올라온 이미지는 두 달 전 사진이다. 지금은 야생미 넘치던 분양 당시보다 포동하게 살이 오르고 애굣살 눈매가 생겨서 태생적인 잘생김에 귀여움까지 묻어나서 독보적인 잘생쁨 아우라가 생겼다. 해랑이 육묘 이야기를 올릴 때 최근의 귀여운 잘생쁨 얼굴도 같이 올릴 예정이다.
진짜 잘 생겼는데,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했다. 벵갈이 많이 활달하고, 고양이계에서는 나름 지랄묘에 속하는 데다, 공격성도 큰 종이라고 들은 바 있어서 더 그렇기도 했다. 이미 들어버린 선입견 때문일까.
우리 집 첫째인 달땡이나, 둘째인 아름이와 달리 눈빛에서 감정이 전혀 읽히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아마도 사람과의 교감이 거의 없었을 아이, 분양 글은 두서너 줄의 짤막한 소개가 전부였지만, 글보다 올라온 사진 한 장에서 더 여실히 파양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손을 전혀 타지 않아 보이는, 야생묘와 비슷한 느낌의 눈동자. 가족이 되기까지 무수히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를 아이. 선뜻 손을 내밀기에는 확실히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검은(?) 색 표범 무늬의 벵갈 아이는.
그래서 평소처럼 이 아이는 진짜 잘 생겼네, 하고 가볍게 넘겼다. 나는 고양이 분양글 보는 걸 평소에도 좋아했다. 사연 있는 고양이 유튜브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날 저녁, 남편에게 검은색 표범 같은 벵갈 무늬 아이를 봤는데, 정말 잘 생겼다고 이야기를 하던 차에, 우리가 입양할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달땡이의 림프종 완치로 큰 산을 넘기고 막 평온해지던 차에, 마침 크고 넓은 새 집으로 이사도 온 터였다. 그 아이를 셋째로? 시기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나는 고양이 여럿과 어울려 살며 글을 쓰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고 자주 말해왔고, 남편도 다묘 가정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다. 당장으로서는 크게 거리낄 만한 요소가 없었다. 분양샵보다는 새 가족이 필요한 파양/ 유기묘를 데려온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다음 날 검은색 벵갈 아이의 보호자에게 일단 연락해 보기로 했다.
간단한 소개글과 달리 통화는 길었다. 분양 글을 올린 이는 벵갈 캐터리를 운영하다가 사업을 접으며 데리고 있던 아이들의 보호자를 하나 둘 찾아주고 있던 터라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역 품종 검색을 해보니 벵갈 아이들 분양글을 정말 여러 개 올리신 분이었다. 한두 살짜리의 비교적 어린 고양이나, 순한 아이들 위주로 먼저 보호자를 찾아 보내고, 나이가 많거나 성격이 까다롭거나, 아프거나 한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가 새 직업 상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져서 그 아이들도 차례로 보호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글에는 중성화 완료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건 업자를 거르기 위한 것이고, 실제로는 중성화가 되지 않은 친구라 했다. 겁이 많고 소심한 성격이라고 했고, 오래도록 번식묘로 지냈다고 했다. 키가 크고 몸무게는 7kg에 다다르는 거구라고 아이를 소개했다.
우와, 진짜 잘 생겼다,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는 생각보다 장벽이 많았다. 캐터리에서 종묘로 4년을 지냈다는 건, 아이가 소개한 것보다 나이가 많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7kg에 육박한다는 건 체형상 포지션 상 캐터리에서 대장격의 수컷 고양이일 수 있단 뜻이었다. 게다가 겁이 많다는 건 유감스럽게도 공격성이 크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우리 집 대장냥이인 달땡이와 마찰이 있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캐터리의 성향을 알 수 없었지만, 눈빛을 봐선 인간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을 개연성도 농후했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어쩌면 무서워하는 아이. 게다가 중성화 이전. 틀림없이 사나울 터였다.
확실히 보이는 것보다 장벽이 많은 아이였다.
캐터리를 이미 접은 마당에 스프레이나 공격성 등 상황 상 여러 가지 사고의 여지가 많을 수컷 성묘를 수술도 시키지 않은 채 데리고 있었다는 건, 그 아이가 이미 다른 집에 갔다가 재차 파양 당해 본 집으로 온 것일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허들이 보통 높을 아이가 아니다. 직감적으로 그걸 느꼈다.
근데, 그래서, 사진만 봤을 때보다, 더 마음이 갔다. 필시 데려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줘서 가족이 되어 주고 싶었다. 가정집 캐터리니 번식장처럼 철창신세는 아니었겠지만 아마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배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을 테고, 번식 시즌이 아닐 때는 십중팔구 별도 공간에 갇혀 지냈을 아이. 아이가 편히 집 안을 활보는 해봤을까. 사냥 놀이는 하고 지냈을까. 애정을 받는다는 느낌은 알까? 저 비범하게 생긴 아이에게 평범한 집 고양이 같은 삶을 꼭 선사해주고 싶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아이가 사는 부산까지는 거리가 상당했기에, ktx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스케줄이 안 맞아서 거진 일주일은 있다가 데려오기로 했다. 아이가 크기가 아주 크다고 해서 어깨에 메는 게 아니고, 바퀴 달린 이동식 대형 캐리어를 챙겼다. 왕년의 달땡이도 7kg가 넘었기에, 나는 그 무게가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았다. 더군다나 덩치가 큰 아이를 빡빡한 켄널에 넣어 답답하게 긴 시간을 이동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날 시원한 빗줄기가 훑고 갔는데도, 부산은 굉장히 더웠다. 약속한 역사 근처에서 잠시 기다리는 중에도 땀이 줄줄 흘렀다. 몇 분 기다리자, 연락이 왔다. 아이가 놀랄 수 있으니 골목 안쪽에 꼬마빌딩 주차장에서 보자 했다. 분양자는 차에서 이동장을 꺼내왔다. 그리고 이동장에서 아이를 새끼고양이 잡듯이 목덜미를 잡아 내 이동장으로 옮겨 주었다. 언뜻 본 아이는 털이 푸석하고, 비듬과 먼지가 묻어 있었다. 세심한 관리가 된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목덜미를 잡혀 나의 이동장으로 옮겨간 아이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간식으로 넣어준 츄르에도, 닭고기맛 저키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남편과 나는 주말부부였고, 남편이 부산 지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회사로 갔다.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남편과 점심을 하고, 남편이 반차를 내고 나와 아이와 같이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던 사람은 아이의 이름을 츄,라고 했지만,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기로 했다. 의성어 같은 이름에 성의를 느끼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아이가 우리 집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해서.
늘해랑- 늘 해처럼 밝고, 환하게, 아이가 그렇게 살았으면 해서 그리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해랑이라고.
해랑이 하니까, 바다를 닮은 부산에 데려온 호랑이 같은 아이 같은 어감도 나서 재미나고 귀엽게 느껴졌다. 이동장 위의 지퍼를 열어 머리를 살며시 쓸어주면서 해랑아,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었다.
넌 이제부터 해랑이야, 행복해지렴.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아이의 공격성이 염려되었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 둔 대전 24시간 대형 병원에서 중성화 수술 전 검사를 하고 입원을 시켰다. 수의사 선생님이 아이가 환경이 바뀌자마자 중성화를 하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였다.
우리도 그 점을 우려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이를 집에 풀어주었다가 다시 잡아서 병원에 올 자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잠시 남편의 회사 휴게실에서 아이를 보겠다고 이동장 위를 조금 열었다가 순식간에 뛰쳐나오는 걸 다시 잡아넣느라고 이미 진을 뺀 터였다. 아이는 사람 손을 거의 타지 않았고, 덩치도 크고, 순간적이나마 굉장히 민첩했고, 남편도 상당한 거구인데, 그에 버팅기는 힘도 장난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둘이 같이 좁은 공간에서 뛰쳐나오는 아이를 잡아넣었기에 망정이지, 집 안에서 아이를 다시 잡에 이동장에 넣는 건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검사 결과가 괜찮다면 수술을 하고, 하루 입원 시켜서 회복을 한 뒤에 데려오고 싶다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데려오자마자 해랑이는 중성화 수술을 했다. 수술은 안전하게, 잘 되었고, 수술 후 경과 설명과 해랑이가 잃어버린 소중한 땅콩도 보았다. 그리고 데려온 해랑이를 베란다가 포함된 안방 다음으로 큰 서재방에 이동장을 넣어두고 문을 열어둔 채, 신선한 사료와 물, 숨숨집과 캣타워와 화장실을 여러 개 두고 나왔다. 쉬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후 습식 간식을 들고 들어서자, 해랑이는 이동장에서 나와 높은 서재 위까지 뛰쳐 올라가 있었다. 수술한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높은 데에 올라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점프력이 생각보다 좋은 모양이었다. 해랑이는 가장 높고 구석진 곳에서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해랑이 근처에서 습식 그릇의 냄새를 맡게 해 준 뒤 바닥에 두고 다시 나왔다.
나는 해랑이의 으르렁거림을 들으며 간식을 챙겨주고, 장난감인 낚싯대를 흔들었다. 해랑이는 여름 내 그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으르렁대서, 초반엔 만지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당연히 수술부위에 약은 발라주지도 못했다. 아이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실밥을 풀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할 때는 해랑이가 유리벽을 타고 반대편 서재까지 날듯 뛰어가는 것까지 봤다.
전쟁 같은 수순을 거쳐 가까스로 병원에 가서 실밥을 풀었다. 병원에서 아이가 사나워서 케어를 못해줬다고, 습식에 약을 조금 타준 게 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고 수술자리가 괜찮은지 물었다. 다행히 아이는 아주 건강했다. 수술 자리는 케어 없이도 잘 아물었다 했다. 해랑이가 건강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그렇게 세 달 가까이, 방에 틀어 박혀 지내다시피 하던 해랑이는, 세 달 만에 한낮에, 내가 있는데도 방 밖으로 스스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해랑이가 처음으로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며 골골송을 부른 순간을, 나는 지금도 방금 일처럼 또렷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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