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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Aug 31. 2024

뚱냥?똥냥! 제7화

07  작고 소중한, 그래서 더 아픈 손가락 같은 장녀, 아름이.

뚱냥? 똥냥 제7화 아름이

유난히 작고 약하게 태어난 내 아가, 

그래서 더 아픈 손가락





 페르시안 고양이인 내 장녀 아름이는 내게는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다. 어릴 적부터 미안한 게 너무 많아서.


 아름이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고양이 카페에서였다. 지금은 조금 폐쇄적인 느낌이 강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꽤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던 네이버 고양이 카페에, 가정분양 글이 하나 올라왔다.


'노르웨이숲 고양이 가정분양해요'라는 제목의.


처음엔 노르웨이숲 고양이란 말에 이끌려 글을 열람했다. 하지만 글을 열고 부모묘를 본 순간 바로 알았다. 가정 분양 대상인 고양이가 노르웨이숲 품종이 아니라 페르시안 고양이라는 사실을.


당시만 해도 노르웨이숲 고양이는 매우 드문 품종이었고, 각 품종별 특징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널리 공유되기 전이니, 이런 식으로 품종을 속여 분양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집에 온 아이들 가운데는 품종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내게 보낸 경우도 있었고, 어릴 적 생각한 품종과 다른 모습으로 자라 실망스러워서 파양 한 경우도 있었다. 데려오기 전에는 나처럼 특정 품종에 대한 로망이 생길 수도 있지만, 키워보면 고양이는 어느 아이건 다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는 법이다.


 분양자분이 말한 것과 달리 노르웨이숲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알았지만, 그래도 사진 속 아이들은 다 예뻤다. 똘똘한 인형 같기도 했다. 글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빠르게 분양자가 결정되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은회색 톤의 친칠라 계열의 아빠묘를 닮은 아이들은 빠르게 분양되어 갔고, 몸통이 갈색톤의 아이들 둘만 남았다. 그중에 건강하고 활발한 수컷 아이도 새 가족을 찾아갔고, 유난히 작고 마르고 약하게 태어난 암컷 고양이 하나만 남았다.


갈색과 노란 털 사이에 검은빛이 섞인 포인트가 있는 아름이는 웅크리고 있는 사진 속에서 꼭 갓 태어난 새끼 사자 같은 느낌이었다. 예쁜데 왜 이 아이만 남았을까, 하고 무심히 스크롤을 넘기다가 우연히 몇 장의 사진 속에서 얼굴이 확대된 사진을 한 장 보았다. 초록색 눈망울이 꼭, 수풀이 우거진 것 같기도 하고, 우주를 품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흡사 알 수 없는 기운에 쭈욱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달까.


올망졸망 페르시안 아가냥들을 보고 아 귀여워~ 하고 넘겼다가, 며칠이나 지나서 전화기를 들었다. 그렇게 뒤늦게 나는 아이의 분양에 대한 상담 문의를 했다. 아이는 날 때부터 체구가 작았다 했다. 활달하고 드센 형제들 때문에 밀려 젖을 먹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허약하다고, 그렇게 일러주는 말에 나는 한 달 여 간 더 태어난 집에서 부모묘와 키우다가 데려오기로 약속하고 알려주는 계좌로 예약비를 송금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아이와 부모묘의 사진을 받으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건강해지기를 기도하다가, 서울역에서 아이를 받고 나머지 분양금을 보냈다. 집에 이미 달땡이가 있었기에, 아이를 캐리어에 넣어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충남 예산에서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온 어린 고양이 아름이의 컨디션 체크도 할 겸, 컨디션이 괜찮다면 그 집에서 아직 못했다는 삼차 접종도 할 심산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아이는 흔히 고양이 감기라고 하는 허피스라고 했다. 부모묘 곁에서 스트레스 안 받고 잘 지내면 건강할 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아이의 상태는 심각했고,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했다. 탈수가 심하다고 했다. 체중도 작고 염증 수치도 너무 높아 다른 병이 있을지 입원시켜서 컨디션을 봐서 상세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도 했다.


사랑해서 키우던 아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 다 키울 수 없으면 하는 게 가정분양일 거라 믿었던 나는 내심 충격이었다. 집에서 부모묘랑 같이 자란, 사료도 먹을 수 있는 4개월 차 고양이가 허피스에 입원이 필요할 정도로 탈수가 극심하다니.


아이를 위해서 더 빨리 데려오는 게 나았을까 온갖 후회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제대로 만져주지도, 다정하게 새 이름을 불러주지도 못한 채 아이를 데려오자마자 입원 수속하려니 속이 배로 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답답한 이동장에 갇혀서 몇 시간을 기차 타고 온 아이가 얇디얇은 팔뚝에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상해 눈물도 차올랐다. 4개월 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디작은 내 어린 고양이가 행여나 잘못될까 싶어 입원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집에서 도보로 20여 분이나 걸리는 대형 병원을 하루에도 네댓 번 면회랍시고 들락거렸다. 그렇게 사흘이나 입원장 신세를 지내다가 아름이는 겨우 퇴원하여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오고 나서도 시련은 있었다. 달땡이의 입양 때만 해도 문제가 없었던 동생의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각해진 것이다. 고양이 알레르기의 정도는 약으로 해결되는 가벼운 수준부터 호흡이 힘겨워지는 것으로 모자라 약의 부작용으로 내분비계가 통제불능에 빠져 버리는 아주 심각한 단계까지 천차만별이다. 유감스럽게도 내 둘째 동생은 후자였다. 단모종인 달땡이가 게으르기도 하고 해서 그루밍을 거의 안 하여 잠복중이었던 알레르기가 매우 열심히 그루밍을 하던 장모종 아름이와 함께 살면서 폭발했던 것 같다. 동생은 숨을 거의 쉬지 못하고,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되었고, 약을 처방받고 먹은 지 한 달여 지나자, 각종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름이, 달땡이와 헤어질 수 없었기에 나는 서울에서 원룸을 알아봤다. 하지만 고양이를 두 마리나 보유하고 있는 젊은 여자에게 월세 집을 빌려주는 곳은 흔치 않았다. 퇴근 후 발품을 팔아가며 가격선에서 협의 가능한 지역을 두루두루 찾아봤지만, 쉽지 않았다. 동생은 나날이 상태가 심각해져 가고 있었기에 마음이 엄청 급했다. 그러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회사 동기가 제안했다. 집을 구할 때까지 아름이를 자신이 맡아 주겠노라고. 당장 집에서 압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때부터 한편으론 집을 알아보고, 또 한편으로는 동기네 들러 아름이를 보고 갔다. 돌아설 때면 모두에게 미안하고, 내 집이 없는 게 너무 슬프고 안타까웠다. 아름이와 떨어지면 나아질 줄 알았던 동생은, 알레르기가 낫지 않았다. 결국 동생은 대학 근처로 자취방을 구해 나가는 걸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동생 때문에 엄마와 사이가 너무 나빠져 본가로 아름 이를 당장 데려올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집안 사정으로 나의 독립이 연기되면서 아름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제제를 보내며 했던 다짐을 또 못 지키게 된 꼴이라, 마음이 마음 같지가 않았다. 때가 되면 아이를 케어해도, 꼭 자식을 엄한 데 떨구고 다니는 엄마가 된 기분이라 늘 처참하고 속상했다.


임보자인 동기도 회사에 가버리면 온종일 빈 집에 남아 있던 어린 내 고양이, 아름이. 숨이 찰 때까지, 헐떡이면서도 나와 끈을 두고 술래잡기를 하던 활달한 아기냥, 우리 아름이는, 세월이 지나도 충분히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 못한 부족한 엄마 탓에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홀로 무한한 시간 속에 남겨졌던 내 작고 여린 아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스트레스 탓이었는지, 환경 호르몬 탓이었는지,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수술 후 제대로 설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고, 운신이 힘들어진 상태에 빠져서 예전처럼 자주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임보였던 동기는 아름이의 가족이 되어주겠다 했다. 그렇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아름이를 맡아준 동기는 곁에 없는 내 몫까지 최선을 다해주었지만, 온갖 치료에도 아름이의 상태는 낫지 않고 오히려 엉망이 되었다.


스스로 피부를 마구 긁어대어 전신의 털이 빠지고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아름이는 무려 처음 분양받은 지 4년이나 지나서 가까스로 회복한 내 곁으로 돌아왔다. 함께 있어주지 못한 4년의 세월만큼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돌보겠노라고, 4살인데 채 2kg도 되지 않은, 뼈와 거죽만 남은 내 어린 고양이 앞에서 나는 다시금 맹세했다. 아름이를 돌보아주던 동기가 긁으면 속상한 마음에 소리라도 질렀던 걸까. 간지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상처 난 피부를 긁다가도 아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멈칫하더니 도망치고 구석에 주저앉아 한없이 떨었다. 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는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기로 했다. 강제적으로 칼라를 씌우길 병원은 추천했지만,  칼라를 쓴 채 생활한 기억에 아름이는 마음의 병이라도 얻은 것처럼, 칼라를 씌우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뱅글뱅글 돌았다. 어린 시절, 동물원 우리에 갇힌 채 하염없이 제 자리 걸음을 하던 사자를 떠오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미안해서 얼마나 많이 오열했던지. 그 뒤로부터 나는 아름이가 간지러워하면 안아주었다. 안고 간식을 주거나 아름이가 좋아하는 털실로 아이의 주의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진정되면 소독을 해주고, 또 놀아주었다. 긁어도 화내지 않는다고,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가르쳤다. 강제로 주입한 약에 대한 나쁜 기억 탓인지, 알약을 먹으면 기어이 토해내고도 게거품을 물면서 몇 시간을 도망 다니는 아름이 때문에 먹는 약은 병원에서 아예 받지도 않았다. 어차피 스테로이드는 내성만 만들어 준다고 했다.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는 동안 아름이는 강제로 먹은 스테로이드 내성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느꼈다. 약을 먹이는 대신에 대신 환부를 소독하고, 햇살 좋은 창가에 방석을 얹어 놓고 창가에서 오래도록 다정하게 달래며 놀아주었다. 소독제와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연고가 아름이의 피부를 약하게 만들까 봐 고양이 질병 책도 엄청 찾아보고, 약과 사료의 성분에 대한 공부도 끊임없이 했다. 사료를 바꿔보고, 간식도 성분 하나하나를 체크해 가면서 먹이고 매일같이 환부의 상태를 기록했다. 그렇게 1년을 넘게 돌보아, 아름이는 몸무게가 두 배 이상 늘어 3kg대 중후반이 되었고, 더 이상 소독제와 연고를 받으러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피부병도 나았다. 상처가 아문 피부 위로 흑갈색 털이 보송하게 난 걸 쓰다듬으며 나는 이제는 이 아이의 엄마라고 감히 불려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더랬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 미안했던, 우리 딸 아름이. 우리 부디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 오래오래 행복하자. 엄마가 널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할게. 사랑한다, 장하고 멋진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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