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냥똥냥 제9화 가온이
EP08. 작고 위태로웠던 랙돌, 미스마킹이 대체 뭐라고!
2022년 이후 랙돌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아주 많은 고양이 품종이 되었다. 당장 유튜브나 sns만 쓱 둘러봐도 랙돌을 반려묘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 몇 년 전과 비교해서 확 늘어났다. 랙돌의 인기 급상승 현상은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랙돌은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외모를 지닌 매력적인 고양이일 뿐만 아니라, 성품도 느긋하고 온순하여 육묘 난이도도 높이 않기 때문이다. 열일곱 마리의 온갖 품종의 고양이를 키우면서 느낀 건데, 랙돌만큼 참한 아이는 별로 없다. 약도 잘 먹고, 느긋하고, 조용하고, 애교도 많고, 공격성도 없고.
다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실은, 특정 품종이 대중적인 인기를 끈다는 건 그만큼 파양률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쉽게 살 수 있으니, 쉽게 버리는 거다. 몇 년 전만 해도 비주류였던 랙돌을 유기, 파양 사이트에서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요 근래에는 성묘뿐만 아니라 아직 어린 랙돌도 심심찮게 보인다. 가온이도 아직 어린 3개월 차에 파양된 고양이였다.
가온이는 동네 펫샵에 있던 고양이라 했다. 2개월 때부터 있었는데 얼굴의 렉돌 마킹이 예쁘지 않아서, 소위 미스마킹이라고 불리는 코 위의 하얀 점과 그 점에서부터 이어진 선 때문에 한 달 넘게 분양되지 않은 채 투명 상자에 홀로 남아 있는 게 딱한 마음이 들어 데려왔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파양하게 되었다고.
하루에도 백여 개가 넘게 업데이트 되는 파양 유기글에는 사유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있더라도 거짓말도 난무해서 쓰여진 대로 다 믿을 수도 없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막상 싼 맛에 충동적으로 샀는데 집에 데려와 보니 생각만큼 예쁘지 않아서 파양 한다고 한들, 당일 배송, 카드 결제 가능, 가격 협의 가능, 파격가, 온갖 유료분양 마케팅 문구를 보면, 이런 사회 구조에서 과연 구매하고 키우길 포기하는 이들을 과연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싶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파양 사유 같은 거 믿지도, 듣지도 않기로 했다. 중요한 건 이 아이가 버려져서 내게 왔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에도, 펫샵에서 분양해 간 강아지를 환불해주지 않는다고 카운터에서 그대로 내던져서 강아지가 죽었다는 취지의 유튜브를 보고 눈물이 왈칵난 적 있다. 동물권 보호 운동 좋다. 사지 말고 입양하라는 취지도 좋다. 하지만 그런 이 사회 한편에서는 외모를 기준으로 입찰가를 정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그뿐인가. 당장 대도시면 쉽게 볼 수 있는 분양샵, 인터넷에 접속하여 특정 묘종을 검색창에 적으면 수십 개가 되는 분양 사이트가 업데이트되지 않는가. 충동적으로 사진을 보고도 전화 한 통이면 쉽고 편하게 당일 배송으로 고양이, 강아지를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 아닌가. 이런 사회이니 내가 내 돈 주고 샀는데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람, 이런 미성숙한 사고방식이 난무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람이지만, 인성 바닥인 사람들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돈으로 생명을 구매하는 시스템 자체가 근절되지 않는다면 유기 파양 문제는 절대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난 생각한다.
가려져 있는 내막이야 어찌되었건, 막상 집에 온 가온이는 정말 너무나 작고 비쩍 곯아 있었다. 3개월 차 어린 고양이라고는 매우 오래 전의 제제와 십 수년 전의 아름이의 짧은 기억이 전부였던 탓에, 당시에는 원래 3개월 차는 이렇게 작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다.
키우면서도 끊임없이 잔병치레를 하는 가온이를 보면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부모묘의 태 안에서 잉태되어 출산 이후에도 제대로 먹거나 관리되지 못한 가엾은 아이였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가온이는 소위 교배 공장 출신의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에 우연히 펫샵 폐업한 사람이 펫샵에 대해 말해준 유튜브 영상에 의하면, 동네에서 소규모로 하는 펫샵은 거의 대부분 자체 교배는 없고 다 경매장에서 사 온다고 하니, 아마 맞을 것이다.
집에서 어미묘에게 충분한 양질의 음식과 운동, 영양제를 챙겨주며 케어하고, 출산 이후에도 모유 수유에, 이유식까지 꼼꼼히 먹여 키우고 있는, 내 손주냥이들은 여리여리한 가온이의 피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1달 반이 조금 더 지났을 무렵 가온이의 4개월 차였을 때의 몸무게와 신장을 이미 초월해 버렸다. 아깽이의 성장속도는 무척 빠르고, 돈을 받고 파는 입장에서야 새끼 고양이가 새끼답게 작고 귀여워야만 잘 팔릴 테니까 원하는 만큼 다 먹여 키우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아무튼 가온이는 집에 데려왔을 때부터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비쩍 말라 있었고, 털은 푸석푸석하게 곤두서 있었고, 뛰고 노는 사이사이 잔기침이 끊어지지 않았다. 너무 어려서 약을 먹이고, 치료해 주는 과정 하나하나 내게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작아서, 한 손바닥에 온전히 다 올라오는 내 작은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잠들듯이 별이 될까 봐, 잠든 가온이를 내 베개에 올려두고 아이를 지켜보면서 새벽을 꼬박 지새우기도 부지기수였다.
바람에 날아갈 듯 작고 여리고 아픈 내 아기 냥이에게,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뜻에서 가온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리 집이 다묘 가정이라서 그러한 걸까. 아니면 사람 엄마의 손보다 보담이라는 벵갈 고양이를 어미라 여기며 고양이로서의 삶을 배운 탓일까. 애교가 많고 느긋하고 게으르다는 랙돌 성향보다는 장난기 많고 활력 좋은 벵갈 고양이의 영향력이 더 컸는지, 가온이는 커가며 체력이 안 받쳐주는데 벵갈처럼 놀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리가 다치기도 했고, 형체들과 치고받고 싸움박질을 하다가 폐출혈도 생기고, 정말 다사다난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간호하고, 나을 때까지 심장을 졸이는 사람 엄마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가온이는 우리 집에 거의 유일한, 내 손을 잘 안타는 고양이로 근 일 년을 보냈다. 그리고 손주냥이가 태어나고 늘 한줌이던 가온이가 조금씩 자라 3kg을 넘겨 중성화를 마친 이후에야 녀석은 조금씩 애교섞인 접근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애교란 것도 느긋하고 소심한 성정 상 내가 읽는 책, 나의 휴대폰 위를 덮은 채 앉아서 골골 거리는 게 전부라, 안기는 것 따위는 아직도 꿈도 못 굴 상황이다.
랙돌은 안아 들면 인형처럼 안겨서 랙돌이란 이름이 붙었다는데 안으면 잘 안긴다는 말은 그저 내게는 환상 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란 소리다. 우리 가온이는 언제나 내가 안아 들면 양손, 양 발로 안기기 싫어서 날 있는 힘껏 밀쳐내곤 하니까. 품종의 특성 같은 것보다는 개묘차가 더 큰 게 당연지사다. 딱히 그 점이 서운하지는 않다. 다만, 잘 안기면 조물조물하면서 몸의 이상을 체크해 보거나 일상적인 관리를 하기가 용이하기에 조금 아쉽긴 하다.
인형처럼 안기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부디 내 영원한 막내 가온이가, 네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도 여전히 미소년 비주얼 그 자체인 청순한 내 아들이, 올해는 작년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건강해지기를. 네가 언제고 밥알을 헤아리듯 먹지 않는 날이 찾아오기를. 위장약을 달고 사는 내 아기가 약기운 없이도 사료를 밤새 토해 놓지 않는 날이 쭈욱 이어지기를. 그렇게 그 아이에게 주어진 수십 년의 삶이 늘 건강하고 눈부시기를 나는 항상 바란다.
내게 와서 고마운 내 아들아, 이제는 부디 건강해 지자. 엄마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