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기 파양묘 분양 사이트를 자주 들여다본다. 하루에도 수 십, 많을 때는 백 개가 넘는 글이 올라오는데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길이 가는 글과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 당장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우리 집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단순한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좀 더 낭만적인 어감의 묘연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우리 자올이, 노을이, 풀잎이를 만나게 된 것처럼.
재작년 연말, 나는 남편과 친한 회사 동료분들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코로나다 뭐다 하여 결혼식도 없이 결혼 생활을 시작한 터라, 소개 겸, 그 해 퇴직하는 선배분이 계셔서 겸사겸사 나간 저녁 식사 자리였다. 남편과 편한 분들이라 자리도, 분위기도 편했다. 긴장하고 나간 게 무색하게.
그러다가 우리 집의 바글바글한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좌중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화두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고양이와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에 달땡이, 아름이, 해랑이, 라온이, 가온이, 보담이, 마루, 새론이 이렇게 8마리가 우리 집에 있었다. 나는 각기 나이도, 성별도, 품종도, 성장 환경도 다 다르지만 어찌나 하나 같이 예쁜지에 대한 팔불출스러운 냥이 자랑을 한참이나 해버리고 말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정말 말도 못 하게 고양이, 내 새끼 팔불출이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고 있기만 해도 시간이 순삭이 될 만치 예쁘고 사랑스러운 생물임에는 부정할 길 없으니까.
이야기가 한참 돌다가, 각자 좋아하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고, 먼치킨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은퇴하시는 분께서 다리가 짧고 동글동글한 생김의 먼치킨 고양이가 그렇게 예뻐 보이더라 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퇴직하시면 낙향하셔서 농사를 지으며 고양이와 사시고 싶으시다는 말씀도.
먼치킨 고양이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은 품종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고양이지만 치명적인 유전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품종이기도 하다고 설명드렸다. 혹여 펫샵이든 어디서든 분양받으실 경우, 그 점을 모르고 데려오는 것보다는 유념해 두고 키우는 게 고양이의 행복을 위해 더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에. 그리고 흔히들 먼치킨 롱레그라고 불리는 다리가 긴 먼치킨 유전자가 있는 아이들이 다리 짧은 아이들보다 더 건강한 편이라는 말씀도 해드렸다.
은퇴하시는 선배분께서는 우리 부부가 냥이를 어떤 경로로 데려왔는지를 궁금해하셨다. 나는 지인을 통해 데려온 셈인 달땡이와 아름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을 만난 유기 파양묘 사이트를 알려드렸다. 내 폰으로 접속하여 입양 문의 방법을 보여 드리고, 데려오는 절차도 화면을 통해 설명드렸다. 그러다가 우리는 보았다. 먼치킨 롱레그인 노을이의 분양글을.
그 선배분은 노을이의 모습에 한눈에 반하셨다. 똘똘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의 먼치킨 특유의 동글동글한 생김의 삼색이.
노을이는 사진으로 봐도 정말 예뻤다. 귀여워. 얼굴에 느낌표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도 다른 먼치킨 아이도 있으니 천천히 보시라고 말씀드리며 몇 장 더 뒤까지 넘겼다. 입양은 신중해야 할 문제였다. 데려오는 건 즉흥적인 결정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한 뒤에 우리는 향후 십오륙 년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흔치 않은 먼치킨이 몇 마리나 분양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이도,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다. 노을이의 입양처도 여기서 한 시간 내외이고, 나이도 2살 정도로 가장 어리고 외양도 눈에 띄게 예뻤지만 나는 솔직히 마음에 말리고 싶었다.
마지막 글에는 먼치킨 암컷냥이인 노을이만 따로 떼어내어 분양글이 따로 올라와 있었지만, 두어 장 뒤의 하루 전에는 아메리칸 숏헤어 풀잎이와 스코티쉬 스트레이트인 자올이의 동반 입양을 우선으로 한다는 글이 아직 입양완료 문구 없이 그대로 떠있었기 때문이다. 세 마리의 동반 입양이, 냥이를 처음 키우는 사람에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마음에 드셔하는 먼치킨 아이는 정말 귀엽지만, 잘못하면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나 세 마리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렸다. 하지만, 술김인지, 아니면 노을이에게 푹 빠지셔서인지 선배분은 요지부동이셨다. 나보고 대신 연락해 주면 안 되냐, 거푸 말씀하시며 이 아이를 데려와 당신께서 기르고 싶다고 계속 부탁하셨다.
나는 솔직히 난처했다. 해당 사이트에 있는 아이들은 태반이 유기되어 임보 중이거나 파양 된 아이들. 재파 양 된다면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가족과 합의되지 않은 입양 의사, 행여 무산이 되거나, 아이가 선배님 댁에서 적응 못하면 우리 집에서 맡을 수 있겠느냐고 넌지시 남편을 가게 밖으로 따로 불러 확인받았다. 남편은 완강하게 그럴 일 없을 거라고, 처음이지만 잘 키울 거라고 말했지만, 기이하게도 나는 내가 본 세 아이가 어쩐지 우리 집으로 올 것만 같았다. 거듭거듭하여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말 우리가 키워줄 거냐고 확인받았다. 남편이, 그러겠다고 다짐한 뒤에야 비로소, 나는 분양자분에게 연락을 드렸다.
토요일 저녁 8시 반 즈음, 최초의 문자 연락에 회신이 왔다. 다른 아이들은 입양처가 정해졌고, 마침 먼치킨 고양이만 입양처를 찾고 있다고. 나는 내가 키울 게 아니고 남편의 형님이 키우실 거라고, 우리가 대신 연락드려서 데려다 드리기로 했다고 사정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남편을 통해 아이의 근황은 전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사정 이야기를 다 한 뒤에 내일 오후즈음에 아이를 데리러 우리 부부가 직접 가기로 약속을 했다. 남편은 것 보라고 세 아이를 갑자기 떠맡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묘한 불안감?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뜻밖의 연락을 입양자분으로부터 받은 건 그날 밤 10시 반 조금 넘어서였다. 아메리칸 숏헤어인 아이의 입양처가 취소되었다고. 혹시 두 마리를 같이 키워줄 수가 있겠냐고. 나는 일단 입양하기로 한 선배분께 남편을 통해 연락해 보겠다고 하고 통화를 끊었다. 남편은, 아메숏은 그럼 우리가 키우기로 하고, 먼치킨 냥이만 드리기로 했다. 나는 아메숏 아이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고 말씀드리고 내일 오후에 같이 데려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는 것 같아 보였지만, 묘하게 찝찝한 마음으로 나는 침대에 누워 남편과 먼치킨 아이가 적응 못해서 우리 집에 오면 아메숏 아이가 있어서 잘 지내겠다고 이야기하다가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 넘어서 눈을 떴을 때, 나는 핸드폰에 쌓여있는 수많은 문자를 봤다. 먼저 입양 갔던 스코티쉬 스트레이트 아이가 파양 당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이 아이도 동반 입양 안 되겠느냐고. 세 마리 다 사이가 굉장히 좋았기에 두 마리만이라도 같이 지내게 되면 적응이 더 빠를 것 같다고.
나는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 한숨을 내쉬며 남편을 돌아보자, 남편도 핸드폰을 쥐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선배분의 아내분이 고양이는 무슨 고양이냐고 결사반대를 하셔서 입양이 어렵겠다는 이야기였다. 미안하고 염치없다고. 아직 데려오기 전이니 입양 문의 취소 안 되겠느냐고.
결국 이렇게 내 새끼가 될 아이들이었구나. 그렇게 납득해 버리자 어제부터 미묘하게 찝찝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도리어 시원해졌다. 우리가 셋 다 키우기로 하고, 사정 설명한 뒤에 언제 데려가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분양자 분이 파양 되어 온 아이가 집에 풀려났다가 몇 시간 있다가 재차 다른 집으로 가는 것보다는 파양자 분께서 데려다주시는 즉시 우리 집까지 바로 데려다 드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우리만 괜찮다면 오전 10시 즈음에 가도 되겠느냐고 했다. 뭐, 데려다주면 데리러 가는 것보다 품이 안 드니 나쁠 건 없었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세 마리 다 우리에게 보내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으셨는지, 분양자 분께서는 아이들이 쓰던 조립식 캣타워부터 자동 급식기, 급수기, 필터, 쿠션, 장난감, 간식까지 한 차 가득 실어서 보내주셨다. 이삿짐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쓰는 물건을 거실에 늘어놓고 다른 아이들은 방 안에 두고, 풀어주었어도 새 집으로 온 게 불안하고 화가 많이 났는지 아이들은 먼치킨 노을이를 제외하고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특히 하루 만에 파양 되어 새벽부터 좁은 이동장에 몇 시간이고 갇혀 있었던 스코티쉬 스트레이트 자올이의 분노는 대단했다. 에어컨 뒤로 숨어 들어가더니 그 좁은 곳에서 어찌나 사납게 으르렁대고 하악질을 하는지, 아이가 탈수가 올까 무서울 정도였다. 화를 내더라도 먹고 화를 냈으면 싶어 겨울용 스키장갑을 끼고 그릇에 습식을 츄르와 더불어 내가고 치울 때마다 두꺼운 겨울 장갑을 이로 사납게 물어서 천이 다 뜯기도록 화를 냈다. 그에 비하면 발랄하게 집안을 탐험하고 다니는 노을이의 해맑음은 경이로울 정도였고, 풀잎이의 수줍은 소심함은 차라리 귀여울 정도였다. 사람이 보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 같아 아이들을 거실에 풀어놓고 우리 부부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자올이는 그렇게 사흘을 내리 화를 냈다. 손이 닿지 않는 냉장고 위, 장식장 위, 창틀 위, 안마 의자 위, 높은 곳을 전전하면서.
고양이의 음식 거부는 만병의 시작이기에, 조마조마했던 며칠이 지나자, 그래도 챙겨주는 그릇의 물과 습식에는 조금씩 입을 대기 시작했다.
지금 와 돌이켜 보자면 세 마리 중에서 가장 똑똑한 자올이기에, 아주 어릴 때 펫샵에서 데려온 이후 줄곧 같은 가족과 살다가 배신받았다는 생각에 상처가 심해 그것이 극단적인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적응을 마친 지금은 자올이는 누구보다도 애교가 많은, 내 침대에서 나와 함께 잠드는 사랑스러운 냥이 되었다.
파양은, 하루아침에게 가족에게 버림받은 세 살짜리 어린아이의 심정과 비슷한 기분을 고양이에게 준다고 하던데, 자올이 도 그렇고, 그런 상처를 몇 번이나 입고서도 우리 집에서 다시 우리에게 정을 주고 사랑스럽게 변한 아이들을 보면 고양이는 정말 강하고, 사람은 얼마나 나약한가를 되새기게 된다. 그래서 다시금 마음을 열어준 우리 아가들에게 늘 고맙다.
사랑해, 내 새끼들. 우리 집에 온 너희들은, 엄마가, 아빠가,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