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냥? 똥냥! 제10화 푸른 하늘을 닮은 아기 벵갈 마루 이야기
EP10 단 하루도 갇혀 살 수 없는 아이, 마루야.
나는 네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마루 역시 내가 자주 접속하곤 하던 유기묘, 파양묘 분양 사이트에서 분양받은 아이다. 어느 날인가 나는 집에서 키우는 첫째 아이와 합사가 안 되어 더 좋은 환경을 찾는다는 스노우 벵갈 고양이에 관한 글을 읽었다. 한창 혈기가 넘치고 활달할 6개월 차 어린 고양이가 작은 방에 줄곧 갇혀서 지내는 게 딱해서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환경의 분양자를 찾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남편과 상의해 아이를 데려오기로 한 뒤에, 분양 글을 쓴 분과 통화를 해보았다. 길지 않은 전화 통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분양자분께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는 것을. 분양자 분은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자를 찾고 있었다. 벵갈은 육묘 난이도가 워낙 높은 품종이라 또다시 파양 될까 싶어 우려하시는 것 같았다.
갓 중성화가 끝난 6개월 차 어린 스노우 벵갈 냥이는 다묘 가정에서 태어나 고양이와도 사람과도 잘 지내는 사교성 많은 아이라고 했다. 아이 자체는 다묘 가정에도 적응을 잘할 테지만, 날 때부터 덩치가 크고 발육 상태가 좋았기에, 성장기가 지나면 덩치가 아주 커질 것 같으니, 지금 있는 집처럼 첫째가 마루보다 작거나 약한 암컷 고양이면 첫째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닐 거라고 했다. 보내시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도 암컷 페르시안 고양이인데 벵갈 아기냥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식사를 거부하고 스트레스를 받아하여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집에도 페르시안 암컷 아름이가 있었지만, 아름이는 체구는 작아도 기존쎄 캐릭터라 그 누구에게든 진 적이 없는 아이였다. 멘털이 강하다고 할까. 마이페이스라고 할까. 벵갈 두 마리가 들어왔을 때도, 기개만은 진 적 없었던 우리 아름이. 체구가 작고 앙증맞은 페르시안 고양이지만 용맹하기 그지없는 딸이다.
무엇보다 새로 이사한 집은 넓었고, 우리 집에는 같은 품종인 벵갈 고양이 해랑이와 보담이도 있었다. 대형묘에 속하는 벵갈 중에서도 타고난 골격이 유난히 좋은 해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첫째인 달땡이도 투병을 했어도 여전히 5킬로가 넘는 거묘, 우리 집에는 이상할 정도로 덩치가 큰 아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첫째인 달땡이가 집안의 중심을 아주 잘 잡아 주었기에, 고맙게도 아직까지 합사에 실패한 경우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같은 품종인 벵갈 해랑이와 보담이가 어린 냥이들에게 상냥하니, 잘 돌봐줄 거라고 말했다.
집 안 곳곳에 있는 캣타워, 숨숨집, 화장실 등 아이들의 쉼터와 생활공간에 대한 사진을 보내고, 중성화 수술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냥이가 컨디션이 회복되기를 기다려, 며칠 후 데리러 갔다. 마루는 이동장 안에 갇혀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타고나기를 갇히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의 고양이가 좁은 방 안에 갇혀서 하루에 몇 번 되는 놀이 시간만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에겐 꼭 자유를 줄게. 네가 집 안 어디든 자유롭게 들락거리고 뛰어놀 수 있도록. 이동장의 숨구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우는 아이를 달래어주며 나는 그리 다짐했다.
사교성 만렙이라던 스노우 벵갈 아이, 마루는 낯선 곳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쉬도록 우는 게 짠해서 다른 냥이들을 분리시키고 마루에 풀어줬는데, 거짓말하지 않고 바로 적응을 마쳤다. 편도체에 이상이 생겨서 공포를 못 느끼는 소설 아몬드 속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그 아이처럼 마루에겐 두려움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외려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만 가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고양이들은 대개 예민하기에 으레 낯선 곳에서는 불안한 듯 포복 자세로 돌아다니는 법인데, 우리 마루는 그런 기색도 없이 꼬리를 한껏 위로 치켜들고 거실 곳곳을 돌아다니더니, 한복판에 있는 의자에 떡 하니 앉아서 태연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하품을 하고,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긴장한 탓에 입맛이 없을까 싶어 뜯어준 참치도 한 그릇 뚝딱 비우고, 거실에 둔 화장실에서 자연스럽게 볼 일을 봤다. 과연 다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답게 다른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합사를 위한 격리는 마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 냥이를 위한 것이었다.
집에 데려온 다음 날 아침, 마루는 냉장고 위까지 올라가서 나를 맞아주었다. 활달하기로도, 운동량으로도 발군이었다. 벵갈이 처음이었다면 놀랐겠지만, 내게는 유리벽을 타고 책장 위까지 뛰어올라가던 해랑이를 목격한 경험이 있었다. 역시 어려도 벵갈-, 이와 같은 감흥은 이런 아이가 방 안에 갇혀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짠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예쁜 여름 하늘색을 닮은 눈동자를 가진 스노우 벵갈 아기냥이에게 마루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마루가 건강하게 집 안 곳곳을 신나게 뛰어다니라고, 으뜸, 꼭대기라는 뜻의 순한글이었다. 창공을 누비는 새처럼 아이가 자유롭게 뛰어다녔으면 하는 내 바람 탓일까. 마루는 우리 집 공식 도른 자, 광마루가 되었다.
낯선 곳에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분양하신 분은 마루의 생일과 접종일, 품종명을 기록한 손편지와 눈이 약한 마루를 위한 안연고, 장난감, 간식에, 매우 얻기 어려운 귀여운 이갈이 유치까지 두루 챙겨주셨다. 마루는 내가 데려온 아이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였다.
분양 엄마와 입양 엄마 모두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아서일까. 마루는 1살이 갓 지날 무렵 복막염 판정을 받았으나, 세 달간의 투병 기간 동안 도리어 키도, 몸무게도 2배 가까이 폭풍 성장하며 무사히 힘겨운 병을 이겨내고 지금은 늘씬하게 자라 멋진 근육질의 늠름한 벵갈이 되었다. 병원에서도 매일 투약량 조절 때문에 체중을 재면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적은 40g 많으면 80g씩 꾸준히 체중이 불어나고 키가 쑥쑥 크는 마루를 보고 기적의 고양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복막염 걸린 고양이가 저렇게 건강하고 때깔이 좋아 보이냐고 하면서 말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아주 투철했던 마루는 아픈 주사 앞에서도 아빠가 안아주면 그 품 안에서 의젓하게 자세를 잡고 3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오가며 투약을 마쳤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놀고, 배가 고프면 우적우적 먹고, 다음 날 정오가 지나면 체력이 떨어져서 잠들었다가 병원 다녀와서 운동하고, 먹고 하면서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고통스러운 병마 앞에서도 극복 의지를 보여준 우리 달땡이처럼, 마루도 힘든 시기를 너무나 의젓하게 버텨주어서 우리는 마루에게 너무 고맙다. 사고 치고, 너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말 안 들어도 되니까, 우리 마루 이겨내 보자고 그리 부탁한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준 것처럼 병원 갈 시간만 되면 어딘가에서 자다가도 슬그머니 나타나 우리 앞에서 얼쩡거리던 마루. 때때로는 스스로 켄넬 속에 들어가서 병원 갈 준비를 마쳐주던 아이. 마루 같은 기적의 아이가 또 있을까. 낫게 해주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에 대답해 주듯이, 마루의 복막염 투병기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기적과 같은 나날이었다. 그 시간을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이겨 내어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은 날, 나는 예정되어 있던 기적을 기어이 이루고 만 우리 마루가 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마루가 앞으로도 아픈 데 없이 자유롭고, 항상 행복하고, 신나고, 열정적이고, 마이페이스인 지금의 모습 그대로 쭈욱 잘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