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권의 역사에서 본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철학책 읽기
동물권의 역사에서 본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한 <우리집 인문학 철학편> 서평
박시몽 지음
상상스퀘어 출판
동물권 사상의 역사에서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근대 이전의 철학에서 동물은 대개 인간의 도덕 공동체 밖에 놓여 있었다. 예컨대 르네 데카르트는 동물을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기보다 복잡한 기계에 가깝게 보았다. 그러나 벤담은 도덕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성이나 언어 능력에서 찾지 않았다. 그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만 급진적이었다.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한 문장은 동물을 도덕적 고려의 바깥에 두어 온 오랜 전통을 흔들었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인간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을 쾌락과 고통의 총량에서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쾌락의 강도, 지속성, 범위 등을 따지는 이른바 ‘쾌락 계산’을 제시하며 도덕 판단을 일종의 합리적 계산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틀 안에서 동물 역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만약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 역시 도덕적 계산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이후 피터 싱어와 같은 현대 동물윤리 사상가들에게 이어져,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 실험을 비판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계산 방식은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쾌락과 고통을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놓을 때, 인간의 큰 행복이 동물의 심각한 고통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공리주의의 방향을 조금 비틀어 보게 된다.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시도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고통을 최소화하는 일이 아닐까. 칼 포퍼는 우리가 강제로 행복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줄일 수 있는 것은 고통이라고 말한다. 윤리의 목표는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소 고통’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공리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확장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동양의 사유와도 만난다. 고타마 붓다는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을 동반하며, 수행의 목적은 그 고통을 줄이고 해방하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이 관점에서 보아도 윤리란 더 많은 쾌락을 생산하는 기술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기 위한 지혜에 가깝게 느껴진다.
동물권 문제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간의 사소한 즐거움이 다른 존재의 극심한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우리는 그 즐거움의 존재 가치에 대해 재차 질문해야 한다. 쾌락은 없어도 삶은 지속될 수 있지만, 고통은 존재 자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동물권의 윤리는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소 고통’이라는 원칙에서 더 설득력을 얻는다.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경계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의 삶이기 때문이다. 큰 쾌락보다 작은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윤리적 존재인 인간에게 요구하고 싶어지는 마음은,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