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을 읽고

앨런 와이즈먼 / 알에이치코리아 /

by 뚱냥이

<인간 없는 세상>을 읽고


앨런 와이즈먼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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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오늘 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내일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은 이 도발적인 가정에서 출발해, 인류가 남긴 거대한 문명이 자연의 압도적인 생명력 앞에 어떻게 무너지고 흡수되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다.


저자는 단순히 상상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문명의 붕괴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인간이 사라진 지 단 이틀 만에 뉴욕의 지하철은 배수펌프가 멈춰 침수되기 시작하고, 수년 내에 도시의 아스팔트 틈새를 뚫고 잡초가 솟아오르며 고층 빌딩은 식물의 뿌리와 습기에 의해 서서히 부식된다.


우리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철근 콘크리트와 화려한 마천루가 자연의 자정 작용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모래성'에 불과한지 깨닫는 과정은 경이로우면서도 서늘하다.


이 책의 논리를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는 바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다. 70여 년 전, 전쟁이라는 비극이 만들어낸 이 '금단의 땅'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간섭이 배제되었을 때 자연이 어떤 속도로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생태학적 타임캡슐이 되었다.


"인간의 전쟁이 멈춘 자리에서, 자연은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다."


철조망 안쪽에서 멸종 위기종인 두루미와 산양이 번성하고, 인간이 닦아놓은 군사도로가 짙은 녹음으로 덮이는 과정은 와이즈먼이 말한 자연의 회복력을 실시간으로 증명한다. DMZ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인간이 자연을 관리하려 들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균형을 맞추며 가장 완벽한 질서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고 자연의 회복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남긴 플라스틱 조각, 핵폐기물, 그리고 화학 물질들은 자연이 소화하기에 너무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와이즈먼은 자연의 위대함을 찬양하면서도, 우리가 남긴 '독성 유산'이 지구에 얼마나 깊은 흉터를 남겼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DMZ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평화로운 숲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묻힌 수많은 지뢰와 오염물질은 인간의 부재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구의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자연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뿐이다.

이 책은 환경 파괴에 대한 뻔한 경고를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에게 인간은 어쩌면 잠시 머물다 가는 소란스러운 불청객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라진 세상에서 자연은 아무런 슬픔 없이, 오히려 더 찬란하게 생명의 꽃을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DMZ를 바라보며 이 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과 같다. 인간 없는 세상을 상상하며 두려워하기보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그 치유의 시간을 함께 걷는 미래를 꿈꿔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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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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