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것, 맞지 않는 것 그리고 맞추어 가는 것.
고유진동수란 특정한 시스템이 외부의 힘 없이 스스로 진동할 때 나타나는 고유한 진동수이다.
공명(Resonance)이란 특정한 진동수에서 시스템이 큰 진폭으로 진동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명이 일어나는 특정한 진동수를 공명진동수(Resonance Frequency)라 한다.
물체는 자신이 가진 속성인 질량, 강성, 형상 등에 따라 고유진동수를 갖는다.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할 때 고유진동수로 진동하는 외력을 가하면 물체가 더 크게 진동한다.
간혹 지진때문에 특정한 높이의 건물만 크게 흔들리는 경우가 있는데, 건물의 고유진동수와 지진의 진동수가 맞아 떨어진 경우이다.
고유진동수는 에너지의 전달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파동이 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힘이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진동수인 것이다.
이런 자연의 이치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그밖에 날 수는 없다.
사람에게도 고유한 진동수가 존재한다. 하지만 질량과 질량분포가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고유진동수도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두 개의 고유진동수를 가진 듯하다.
하나는 물리적 의미에서의 고유진동수이고, 나머지 하나는 인간이 가진 독특한 고유진동수이다.
‘나와 맞는 사람’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추상적인 고유진동수이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까지 터놓을 수 있다. 반면 성향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이질감을 느끼고 긴장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즉 자신과 진동수가 비슷한 사람에게 공명하고, 그렇지 않으면 원래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상극인 사람에게 끌리기도 한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마음이 편한 것과 다르게 긴장 상태가 주는 아슬아슬함이 있다고 할까. 우리는 완전히 안정적인 것 못지 않게 스릴을 즐기는 것같다.
한편, ‘좋아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자연의 이치에 따라 설명해보자.
소리굽쇠는 자신의 진동수와 꼭 맞지 않아도 함께 진동할 수 있다. 단지 그 진동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뿐이다.
우리도 서로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리고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마음도 자신의 것을 내어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만약 꼭 맞아야만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외로운 사람들 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스스로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과 같은 곳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진동수를 그 사람에게 맞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비로소 그 사람의 진동에 공명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그럴 능력을 가지기에 무리를 짓고,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두 개의 차원에 살아가는 인간은 자연의 이치에 구속받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늘 방법을 찾는다. 자유로울 수 있는 차원을 구성하고 자연에 예측 불가능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