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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하나?

명탐정 코난을 통해 본 사실과 진실

by 김단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다. 바로 명탐정 코난이다. 남들은 유치하게 그런 걸 아직도 보냐고 묻지만, 코난은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였다.


아마 첫만남은 극장판 DVD 였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아빠랑 매주 DVD 방에 가서 CD를 빌려오곤 했다. 표지만 보고 빌려왔던 건데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그다음부터 나는 투니버스에 나오는 명탐정 코난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탐정이 이상한 약을 먹고 어려졌다는 독특한 세계관에 매번 쏟아지는 신박한 에피소드까지, 나는 코난에 푹 빠졌다. 아마도 코난이 당시 나랑 나이가 비슷했으니 내적 친밀감 같은 것도 생겼던 것 같다.


예전의 코난은, 현실에 있을 법한 원한 관계를 잘 담아내면서 사건을 현실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래서 때로는 엔딩이 씁쓸하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특히 러닝타임이 긴 극장판에서는 다양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소재 고갈 이슈가 있는지 범죄 동기도 기괴해지고 사건 해결 방법도 비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뭔가 깊은 메세지가 있다기보다는 오락성이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아 오랜 팬으로서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 명탐정 코난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진실'이다.


진실(Truth): 거짓이 없는 사실


정의에서 알 수 있지만 진실은 사실보다 작은 개념인 것 같다. 사실에 '거짓이 없는'이라는 추가 조건이 붙어야만 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난이 추리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진실이다. 그리고 추리에 사용한 재료는 사건을 둘러싼 사실들이다. 그러므로 코난은 모든 사실을 종합해서 거짓을 벗겨낸 진실을 얻는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코난의 추리한 내용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물론 대체로 코난의 추리가 틀리지 않지만 그 자체로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한가지 장치를 추가했는데, 그것이 바로 범인의 자백이다. 매번 코난이 화려하게 추리를 하면 범인은 고개를 떨구고 범죄 사실을 털어놓는다. 간혹 사악한 표정을 하고 달려드는 범인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범죄 사실을 뻔뻔하게 털어놓고 칼을 든다.


그러므로 코난의 추리는 범인의 자백으로써 진실이 된다.


약간 다르게 말하면 범인의 시인 없이는 그럴 듯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코난이 제출한 답안을 채점하는 사람은 사건을 저지른 범인이 된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코난의 추리에는 범인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명탐정 코난의 오프닝 멘트를 보자. 매번 코난이 외치는 말이 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


과연 그럴까?


이상적인 상황에서 진실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명탐정 코난처럼 모든 시나리오가 다 짜여 있으며 그 진실을 말해줄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 그런 곳에서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는 진실이 아닌 '사실(fact)'을 본다. 그리고 정의상 '사실'이라는 것은 가치중립적이다. 그냥 우리가 오감으로 보고 느끼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는 그 사실을 토대로 생각이란 걸 한다. '문고리가 뜨겁다'가 사실이라면 '밖에 불이 났다'처럼 그럴 듯한 설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코난의 추리처럼 이 역시 진실인 것은 아니다. 문을 열어 불길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늘 진실을 보고 살 수는 없다. 남자친구가 왜 화가 났는지 그건 그 사람이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남겼는지 그건 아인슈타인 본인만 알 수 있다. 전자는 위험을 무릎쓰고 캐물으면 알아낼 수 있지만, 후자는 알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한다. 우린 진실의 범주를 넓혀 그럴 듯한 설명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면 음식이 상했었구나 하는 것이고, 문이 알아서 닫히면 바람이 불었겠거니 하는 것이다. 이별한 친구가 길에서 울면 그 사람이 생각났겠거니 하는 것이고, 음식점에서 손을 들면 주문하겠거니 하는 것이다. 우린 굳이 진실을 따져 묻지 않아도 알아서 진실을 만든다.


잘 생각하면 과학도 그런 맥락에서 이어져 왔다. 어떤 이론이 현상을 잘 설명한다면 그것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토대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아간다. 그렇지만 과학은 암울한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 스스로 진리를 갈망하지만 그것을 승인해 줄 주체는 어디에도 없는 것같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에는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한다. 집 안이 기울었기 때문에 문이 알아서 닫혔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별한 친구라도 압정을 밟고 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때 세계의 진실과 나의 진실은 분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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