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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 모델링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DCF, EV/EBITDA, 재무모델링

by 고니파더

인정받지 못하던 심사부서를 떠나 IB로 전보된 후배와 술 한잔하고 쓰는 글입니다.


그러고 보니 술 한 잔이 아니네요. 새벽까지 마셨으니...


부동산 금융만 줄기차게 하던 녀석인데 인수금융에 대해서 이제 알아야 할 것 같다고 도움을 요청하더군요.


이것저것 책 소개부터 부탁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 대견합니다. (많이 컸다)


보면 도움이 되는 책들을 몇 개 소개해 주던 차에 이런저런 재무 모델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선배는 어떤 모형을 주로 쓰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응. 나는 모형 안 쓰는데?"


"엥? 그럼 주관사들이랑 이야기할 때 뭘로 이야기해요?"


"그들이 좋아하는 DCF, EV/EBITDA 모델에 대한 허점을 이야기하지"


"허점? 이렇게 그대로 따라서 이야기했다가 무시당하는 거 아니에요! 제대로 이야기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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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조금 긴 이야기라 대화체는 생략하고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정확히 말해 슈퍼 울트라 능력 보유자인 CPA 들이 작성한 DCF 모델은 기본이 다 추정이라는 것부터 알고 시작해야 합니다.


IM 자료의 미래 Cash Flow 추정에 보통 아래와 같은 문구가 나올 겁니다.


일부는 제가 그들의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니 참고만 하시길.


'미래의 매출은 이렇게 성장할 것이고, 매출원가는 이 범위에서 관리 가능할 것이며, 이로 인해 향후 5년, 혹은 10년 동안 이 기업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이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을 현재의 수익률로 할인하여 기업의 가치를 정할 예정입니다. 향후 예상되는 기업 가치 대비해서 이 건은 매우 싼 건이니 빨리 돈을 들고 들어와서 이 딜을 받아주세요.'


매출, 매출원가,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추정. 뭐 이건 그렇다 치고.


제대로 IM을 작성하거나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는 저 '할인율'수치와 근거를 꼭 물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또 할인을 하는 기간이 언제는 5년이고, 언제는 10년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7년이고 제각각인 사유에 대해서도 말이죠.


IM 자료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읽어 보라는 의미는 각각의 수치들을 작성자가 어디서 가져왔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따져보라는 말.


그냥 어설프게 아는 금융영어 써 가면서 아는 척만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는 척은 정말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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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수많은 인수금융 딜을 검토했지만 할인율 출처, 근거에 대해 전화 안 끊고 이야기해 준 주관사는 딱 한 곳이었어요.


심지어 이 분은 대형 증권사에 소속된 분도 아니었습니다. 캐피탈사에서 근무했던 분으로 기억되네요.


IM 자료를 보면서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노트에 적어가면서 심사하던 때가 오버랩 되는 순간.


그때 제 노트에 있던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추정치 근거로 제시한 할인율의 백데이터는 어디에 있지?' 여기에서 시작된 궁금증의 파급력은 상당히 컸습니다.


차후에 확인한 논리가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허접한 할인율 선정 근거를 보면서 '재무 모델링이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죠.


상대가치평가법은 또 어떤가요?


최근에 이 기업과 비슷한 기업이 이렇게 팔렸다, 그러니 이 기업의 가치도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최근에 팔린 기업 가치가 아래와 같이 Over value 되어 있던 거라면?


https://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24901

그래서 이 인수금융의 가치평가 방법의 롤 모델 자체가 부풀려진 것이라면?


https://dealsite.co.kr/articles/131537

최근에 거래가 된 가격과 EBITDA Multiple을 비교하거나 Peer 그룹 대상의 PER, PBR을 비교하면서 '싸다, 비싸다'라고 하는 것들은 또 어떻습니까?


모두 다 판단을 내리는 시점에 변동되는 수치들입니다.


더군다나 비상장기업이면 기준점이 되는 주가 자체가 있지도 않으니 지표로 쓸 수도 없습니다.


결국 재무 모델링이라는 것 자체가 변동성이 심하다는 이야기고 기준점이 어디인가에 따라서 가치가 매우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걸 교과서로만 배워온 사회 초년생들,


그리고 IM 자료 보고 주관사 대접만 받는 일부 몰지각한 투자자분들과 이야기해보면 재무 모델링을 거의 신처럼 신봉하는 걸 보게 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CPA가 만든 걸 니 따위가 왜 부정하느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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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CPA Licence가 없으면서...)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DCF, EV/EBITDA, 상대가치평가법을 모두 다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경계하라는 의미.


저 역시 늘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DCF, 상대가치평가법 등도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냥 참고 자료의 일부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모델링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모델링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모델링은 쓸만하고, 이 모델링은 조금 과장되어 있다'라고 자기의 의견을 심사서에 낼 수 있는 투자자, 혹은 심사역이 되어야, 제대로 된 기업 가치를 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최근 푹 빠져있는 마이클 루이스가 쓴 'Big Short'에 나오는 아래의 문구로 오늘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봐요. 당신들의 모형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 빅쇼트 중에서"


(도이체방크에 근무하는 그렉 리프만이 모건스탠리 CDO 부서 트레이더들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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