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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인데 오션뷰라고요?

현장 실사의 중요성

by 고니파더

최근에는 현장 실사를 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규모가 큰 회사로 이직하면서 놓치고 있는, 아쉬운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늘 강조해 왔던 것처럼 직접 가서 보고 물어보고 듣는 것의 가치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죠.


'구글 지도로 다 볼 수 있는데 무슨 현장 실사 타령이냐?'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컴퓨터 모니터 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현장만의 묘한 (?) 기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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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회사채 심사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신용평가 보고서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가는 그 찰나의 순간, 남들이 모르는 정보 한 두 가지를 캐치할 수 있는 기회가 옵니다.


돌이켜보니 이런 경험들이 저한테는 보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갑자기 글을 쓰는데 현장 실사만 나간다고 뭐라 하던 팀장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 냥반이 하는 일은 늘 사무실에 앉아서 부장과 함께 노가리만 터는 거였습니다.


혹은 부행장실에 가서 마음에 들지 않는 심사역들을 험담하는 것이 일의 대다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진하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조직이 망해가는 징조라고 생각해요.


짜증 나고 답답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은 현장실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 날 후배가 서류를 받자마자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라고 소리를 치더군요.


무슨 일인가 해서 봤더니 '반지하 + 1층 근린상가'를 담보로 대출을 거의 100억 가까이해달라는 요청을 보고 씩씩 거리던 후배.


감정가도 역시나 그리 높지 않아서 신용대출을 많이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죠.


처음에는 저도 그냥 웃어넘기며 '알아서 잘 포기하게 만들어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임차인이 '런던 베이글'이라는 겁니다.


응?


내가 아는 그 런던 베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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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벌써 2년 전입니다.


나름 영국에서 베이글 좀 먹어봤던 베이글 러버로써 '런던 베이글'이라는 가게 이름은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존재였습니다.


거기다가 지하 1층의 새로운 임차인이 '몽탄'이라는 겁니다.


응?


내가 아는 그 몽탄?


극악 웨이팅으로 악명 높은 ‘이 곳’...모던보이와 모던걸이 몰린 이유는 [푸디人] - 매일경제


"대체 지역이 어디길래 임차인이 이 정도냐?"라고 물어보자, 담당하던 심사역도 옆에서 놀고 있던 부장도 "얘네들 대단한 애들이야?"라고 되묻더군요.


이 사람들은 런던 베이글을 마치 파리바게뜨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곧바로 심사 의뢰서를 보니 사업지가 제주도였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저는 현장 실사를 무조건 가보기로 결정.


무엇보다 막 사업장을 조성하고 있어서 구글 지도로도 안 보여서 어쩔 수 없었어요. 감정평가서도 있었지만 감이 안 오더군요.


곧바로 승인을 받아서 제주도로 내려갔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도착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도착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50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런던 베이글의 긴 웨이팅 줄.


정식 개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몽탄이라는 베스트 식당이 들어온다는 반지하의 위치였습니다.


형식상 반지하가 맞긴 맞았습니다만, 지면 아래에 위치하고 있을 뿐, 앞은 아무것도 없는 탁 트인 바닷가 뷰더군요.


이보다 더 좋은 위치의 식당을 저는 아직까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완벽한 위치.


여러 가지 이야기할 수 없는 사연이 있긴 하지만 차주의 재력도 상당하더군요.


무엇보다 임대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훌륭한 곳.


런던 베이글과 몽탄의 콜라보라니요.


마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같은 건물에 임차인으로 들어온 형국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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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이 물건이 지금까지 봤던 어떤 실물 부동산보다 더 매력적인 물건으로 기억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런던 베이글을 동네 빵집으로, 몽탄을 명륜 진사 갈비로 알고 있는 부서장과 팀장들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어찌어찌하여 투자는 그렇게 승인이 났습니다.


물론 이후에 저는 회사를 떠나서 지금까지 그 상대방이 잘 거래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엇보다 저로 하여금 '실물 부동산은 무조건 현장 실사가 답이다'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사례라 기억이 남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터뷰 자리에서 사장님이 하던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언제든 제주 오시면 제가 몽탄에서 한번 모시겠습니다!"


회사를 떠나면서 결국 가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는 하루입니다.


사장님은 여전히 잘 계실까? (기웃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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