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에서 피해야 하는 빌런들

관상은 과학이다

by 고니파더

쉬어가기 위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봅니다.


그동안 심사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네요.


개중에는 일반 서민도 있었고 재벌 기업의 높으신 분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정OO 회장님과 한OO 회장님, 송OO 의장님을 만난게 떠오르네요. 그때는 왜 그리 떨었는지...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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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주관사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투자나 대출을 받으려는 거래상대방을 의미합니다.


아래는 제가 인터뷰 할 때마다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했던 타입입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분들과 관련된 심사건들은 대부분 부결했던 것 같아요.


이를 보고 누군가는 '너무 사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합니다만,


여기에 대한 제 대답은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것.


플러스!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내 준다'는 것.


그럼 믿고 거르는 빌런 타입을 소개합니다.


1. CEO 친구형


처음부터 끝까지 'OO은행 행장을 잘안다' 혹은 OO공제회 회장이랑 어제 술마셨다'라고 말하는 타입.


보통 이분들의 겉모습은 부동산 분양 대행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옷차림을 이야기하자면 앙드레김 선생님을 연상하게 만드는 화려함과 잘 다듬어진 올 백 머리 등이 국룰.


(스티븐 잡스가 괜히 단조로운 옷차림으로 PT 하는 게 아니랍니다)


저는 이 차림새와 그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이렇게 판단하죠.


'이 건은 윗사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딜이다'라고...


그래서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면 귀신같이 딜의 허점이 보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말이죠.


말과 행동을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분들이라 이분들과의 만남은 참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고 늘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지'라는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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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잘알아형


이 타입은 상대방의 말을 보통 듣지 않습니다.


'니가 뭘하든, 뭘 물어보든 상관없어. 이건 내가 잘 알아'라고 이야기 하는 타입인데, 그러다보면 산으로 갑니다.


결국 좋지 못한 결론 (여기서는 부결)에 다다르게 되는데 본인이 말하고 싶은 것과 상대방이 궁금한 것은 다르다는 걸 이분들은 잘 모르죠.


저도 애송이때 실사 자리에서 이런 실수 꽤 했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음이 급해서였어요.


그 이면에는 '나의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무시받으면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말도 안합니다.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척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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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더 마음이 편한 것도 있지만 동시에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걸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상대방 말을 잘 들어보면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알고 있나' 쉽게 판단이 됩니다.


그래서 요새는 한 두개 질문 던지고 나서 계속 듣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알아서 걸러집니다.ㅎㅎㅎ


3. 동문서답형


물어보는 질문은 '단점에 대한 해결방법이 무엇이냐?'인데, 대답은 '장점은 최근 높은 수익성입니다'라고 말하는 형태입니다.


본질을 흐리는 타입인데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단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 (최악)


두번째는 단점에 대한 보완이 안되는 경우. (그나마 나음)


한건에 아무리 작아도 1,000억, 큰 경우에는 1조 정도 되는 규모의 딜을 하는데 이런 걸 커버하지 못한다는 건 그야말로 '뻔할 뻔'이라는 의미.


준비가 안된 말만 많은 사람들이 보통 이렇습니다.


4. 미안하다 사랑한다 형


이 타입은 조금 안쓰러운데 딜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미팅에 참석하는 경우입니다.


혹은 대상회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머리에 들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인터뷰에 들어오죠.


그냥 형식적인 자리라면 '허허허, 하하하'하면서 체면치레는 할 수 있지만 저처럼 시간이 없어서 안달내는 사람,


인터뷰 자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한테 걸리면 말 그대로 처참 앤드 비참해집니다.


한 두 질문에 대답을 못하다가 세 개가 넘어가면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인데,


미안하지만 이들에게는 시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그런 대상에게는 더이상 질문을 할 필요성 조차 느끼지 못하거든요.


질문을 하면 뭐합니까? 그때부터 구글링으로 찾기 시작할텐데.


시간만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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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준비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는 대화가 오갑니다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시간에 제 개인 리서치를 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입니다.


조금 매몰차게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사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은 저에게도,


저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정말 후배들 하나하나 하드 트레이닝 엄청 시켰는데...지금은 슬램덩크 안 선생님이 되어 버렸음. ㅎ)


LP라고 해서, 대주단이라고 해서, 심사역이라고 해서 미팅에 준비없이 참석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아니...이건 예의라기 보다는 본인 회사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깍아 먹는 겁니다.


'제가 너무 바빠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서' 라는 이야기는 핑계일 뿐.


가장 기본적인 '금융은 신뢰에 기반하고 한번 깨진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 라는 사실을 늘 가슴속에 넣고 살아야 겠다고 다시금 다짐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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