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이름으로

크고 두꺼운 나의 아버지의 손

by 롤코


아버지란 단어를 유심히 바라볼 때면

방황의 시작과 끝이었던

나의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지나간 시간들 그것이 곧 경험이고 배움이라는

나의 철학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사랑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나의 존재의 이유를 정의할 수 없고

삶의 까닭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땐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끝없는 한탄,

부모의 불화로 인해 불안했던 가정으로부터

가엽고 나약한 존재로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가장 어리석고 치졸한 방법으로 나를 나로부터 지켜왔다


과거를 인정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사랑하고 싶지만

나의 모든 진심을 써 내려가고픈

이 글 한 장 어느 하나에도 담고 싶지 않은 걸 보면

아직 그때의 내가 너무나도 미운가 보다


내가 말썽을 부릴 때면

아빠는 할머니의 수목이 있는 곳으로 날 데려가곤 했다

그리고는 그 어두운 밤, 중학교 2학년 짜리 여자아이가

혼자 우둑한 소나무 앞에 주저앉아

하루종일 울어 팅팅 부운 눈을 비벼가며

그의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또 사죄하곤 했다


명절날 받은 용돈들을 손에 쥐어주며

아빠의 주머니 걱정을 해주던

어쩌면 철이 너무 빨리 들어버려 안타까웠던

똘똘한 내 딸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했을 순간의

한 남자의 절망감이 잠시나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란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중학교 2학년 짜리 여자아이가

어느덧 스물네 살의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 9년이란 세월 속에서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로

실망과 좌절의 나날들은 여전히 가득했지만


분명한 건 그 아픔과 고난들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도 10년 간

홀로 외친 끊임없는 아우성과

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주기만 했던 사랑에

한 남자의 노력에 살이 붙어

단단한 무언가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 하나를 깨닫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아니 어쩌면, 앞으로 끝없는 세월을

더 깨달아야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단 한 가지

끝없는 배신과 좌절에도

되돌아오지 않는 막연한 사랑에도

절대 그 어린아이의 작은 손을 놓지 않았던

크고 두꺼운 나의 아버지의 따듯한 손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