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가진 아빠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어릴 적 나는 달랐다.
아빠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10살이나 어린 엄마를 아랫동네로 시집오게 해서는
정치를 하고 싶다는 다소 거대한 욕망을 품고
20대부터 가축업에 종사해오며 일궈놓은
소 100마리를 시원하게 팔아먹는
미친 추진력을 보여주곤 했다.
30대가 훌쩍 넘어 늦깎이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사회생활을 핑계로
매일같이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돌아다녀
매일 밤 엄마의 독촉 전화는 끊이질 않았고,
언니와 나는 매일 밤 잠결에
아빠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를 맡아야 했다.
가끔 우리 자매의 샤워를 시켜주는 날에는
섞어 쓰면 똑같다는 이유로 샴푸와 린스를 골고루 섞어
머리를 대충 감겨주곤 엉키고 설킨 우리들의
긴 머리카락을 본 엄마에게
또 한 번의 잔소리를 듣곤 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빠의 30대 모습이다.
30대였던 아빠는
어느덧 50대 중반 끝자락에 서있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아빠의 모습은
매번 통통하게 차올라있던
강호동 같은 얼굴도 아니었고,
매일같이 죽어라 부어라 마시던
혈기왕성한 청춘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은 신나는 노래가 아닌
반야심경을 들으며 잠에 드는 것이 좋고,
가끔 술을 마신 날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조용한 음악에 혼자 취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변해버린 중년의 아빠에게도
여전한 한 가지는 남아있었다.
바로 30대 그 순간 그날들의 “열정”이다.
새벽 5시, 출근 4시간 전부터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
수천 평이 넘는 땅에 심어놓은 농작물을 관리하고,
회사가 끝나고 나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집에 돌아와 자격증 공부를 했다.
그렇게 갖춘 지식은 아빠의 또 다른 도전에
발판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30대는
인생이 서툴러 사람에 서툴렀고
사람에 서툴러 가정에 서툴렀던 것이라고 말이다.
어릴 적 꼬마의 이상 속 존재하는
뭐든 완벽한 슈퍼맨 같은 아빠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지만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삶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 서 있는 지금 현재
내가 바라본 아빠의 모습은
내가 결국 바라는 나의 배우자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결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에게 언제나 삶에 해답과 힘을 실어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든든한 그늘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