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지 못 한 사랑

지난 시대의 사랑, 이승훈

by yina



그때처럼 바람이 불고 뛰어나가 껴안으면

너는 말없이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는구나

오늘 저녁 창문을 때리는 너의 목소리

뛰어나가 껴안고 싶구나

세월이 흘러간게 꿈만 같구나

저녁은 너무 짧고 세월도 너무 짧아

가슴 마르는 구나


-이승훈, 지난시대의 사랑


처음에 이 시를 읽었을 때 들었던 느낌을 상기시켜본다.

아, 정말 애간장이 타는 듯한 막막하고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겉으로 읽기에는 세월이 그저 많이 흘러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세월' 이라는 어감이 주는 느낌 자체가 화자를

나이가 지긋한 사람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가 주는 속도감 때문에

나는 처음 읽은 느낌에서 반전인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의 화자는 계속 뛰어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화자 본인은 "저녁이 너무 짧고' , "세월도 너무 짦아"

시간이 찰나인 것 처럼 언급하고 있으나 사실 실제 시간과 상관없이 화자 본인이 짧은 사랑만을 하고 있다. 이 사람 스스로가 빠르게 불타오르는 사랑만을 하고 있기에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완벽하게 완성될 때 오히려 더 느려지고 느긋해지는 것인데 화자는 처음 사랑할 때의 그 조바심내는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뛰어 나가려 하는 행동이 2회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말없이 커다란 눈(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한 사랑의 상징) 과 이 화자의 행동이 대비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오늘 저녁 창문을 때리는 너의 목소리

뛰어나가 껴안고 싶구나

이 부분에서 밖에서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분명 요동치고 있는데 본인 스스로는 문 밖으로 나가서 마주하는 용기를 내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너무 큰 사랑 앞에서 오히려 다가가지 못 하고 방어기제를 부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람은 밖에서 그 목소리가 창문을 때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창문 안으로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와 주기 까지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그 누구보다 뜨겁고 가슴에 벅찬 사랑을 품고 있으나 그 사랑이 느긋하고 오롯이 상대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랑까지 진화하지 못 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히려 그렇게 방어적이고 의심 투성이인 사랑이기에 빗발치는 눈처럼 아름다운 것이라고 형상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비밀은 화자는 지난 시대를 거쳐 올 만큼 늙은 이가 아닌 너무 젊고 풋풋한 사람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그의 그 지난 시대는... 너무 짧다.

그러나,

그래서 아름답다.

작년 12월 말 폭설 내리던 종로3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