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유년기부터 성년기까지
한 소녀를 책임지기 위해 3번을 죽고 3번을 환생 해서라도
기어코 사랑하게 되는 어느 강아지의 이야기.
주인을 잊지 않고 계속 지켜주는 강아지의
사랑스럽고 충성스런 모습에 감동을 주는, 흔히 그런 이야기로 해석 된다. 그렇지만 두 번, 세번 볼 수록 이 영화에는 사랑에 대한 인간의 잔인한 강박이 느껴진다.
먼저 소녀는 어떤 상황에서든 끊임없이 자신을 잊지 않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강한 외로움을 상징한다.
그리고 강아지 베일리는, 운명적 사랑에 사로잡혀서
한 사람만을 사랑을 하게 되는 광기를 보여준다.
그는 3번을 죽고, 환생할 때마다
다른 환경, 다른 종으로 태어난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매번 주인과 이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환경을 기적적으로 돌파한다. 또한 본래의 본인을 몰라줄지라도 그래도 나는 너를 기억한다, 그러므로 사랑한다, 이렇게 조건없는 사랑을 그녀에게 베푼다.
영화에서는 베일리가 강아지이기 때문에
내면에 아무 갈등이 없다. 직선적으로 사랑만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래서 통쾌하고 멋지게 매번 어려운 환경을 뚫고 그녀의 곁을 지킨다. 그렇지만 현실속의 인간은 어떠한가. 이런 상황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가 어떻게 다시 닿을 수 있지?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못 하는데, 내 서운함을 딛고 사랑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인간은 늘 운명적 사랑에 사로잡혀서 현실 때문에
갈등한다, 그것은 참 괴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결국 베일리처럼 아무 욕심과 이기심없이 그저 순수하게 사랑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베일리는 그 절대적 순수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과제처럼 삶 속에 놓여있는데, 베일리가 그것을 해내는 기적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이다.
10 19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