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직면 사이

마음이 다치면 마음이 닫힐 수도

상담은 한자로 相談(서로상, 대화담)이라고 쓴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사설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주 상담을 받고 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전문적인 상담은 다르다.


상담을 하면 속이 시원해지거나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결된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이 상담을 받은 사람에게 더 필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례를 제외하고 그저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나의 경험담이다. 몇 일전, 일을 하고 집에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길기에 요점만 말하자면, 상대방이 거의 100%에 가까운 과실의 교통사고다. 그런데 차 옆을 박아서 그런지 충격이 커서 입원까지 하고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고 난지 몇 일 후, 지인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들어서 알았다면서 어떠냐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들으면서 점점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었다. 불쾌했던 포인트는 이 사고는 너의 약함으로 인해서 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운전했던 것을 몇 번 보시고는 차간거리를 너무 짧게 한다고 여유있게 하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얘기하셨던 것 같다. 그 말이 나에게는 네가 안전운전을 했더라면 사고는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고까지 들렸다. 물론 내가 작위적으로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맞는 말이 항상 좋지는 않다. 오히려 좋지 않을때가 더 많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확히 과녁에 맞히는 말이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직면이라고도 한다. 상담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는 기법이기도 한데 다만 필요할 때, 아주 적기에 사용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담에서 직면을 거의 쓰지 않거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 같다.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러 온 사람에게 충분한 공감과 이해없이 직면한다는 것이 못할 짓 같아서 이다. 물론 그 사람의 문제가 어떤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거나 자신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다면 직면 시킬 필요도 있지만 그건 그가 그 직면을 받아들일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나는 그 분과 통화하면서 차라리 자초지종을 묻고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까지 말만하고 끊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을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고가 나면 사고 당사자가 제일 괴롭고 힘들다. 사고 후 처리와 아픈 몸 치료 같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생기는 것 뿐 아니라 자기반성을 하게 된다. 그냥 내가 안 서 있었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텐데 같은 자책까지. 사실 나도 다 안다. 그분이 이야기 한 것들 말이다. 그러니 훈수를 두고, 옳은 말을 하거들랑 충분히 전후사정 살피고, 위로를 건넨다음 하시라.


이 말이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말이 생각이 난다. '진리는 사랑의 보자기에 싸서 말하라' 20여년 전 쯤 들었던 말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진리는 아프다. 때로는 송곳으로 후벼파는 듯 하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고, 바꾸고 싶지만 고쳐지지 않는 내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의 마음을 사고 싶다면, 상대를 돕고 싶다면 판단과 비평, 나아가서 직면과 조언은 잠간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나중에 그가 요청하거들랑, 아니면 대화 다람쥐 쳇바퀴 돌거들랑 그때 들이미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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