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운 자리
이번 신학기에 대안학교로 편입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째 딸이 3년째 다니고 있는 학교다. 아들은 딸처럼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 있을 때, 아주 기분이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전화한다. 그러니 아들의 전화는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수영을 하느라 귀한 기회를 놓쳤다. 그래서 아들은 엄마에전화를 했다.
아내와의 통화로 아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확인했는데 마무리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는 아들이 학교기물을 실수로 파손시켜 새 물건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아들의 반응은?
"내가 잘못했지 뭐", "다음부터 조심할께" 같은 대답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다.
자기는 억울하다면서 급기야는 그런 이야기할꺼면 끊으라고 했단다. 그 소식을 전하는 아내의 말에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판단의 순간을 맞이한다. 때로는 분석을 잘 해야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의 분별이 항상 좋은 마무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자녀들의 갈등상황에서의 개입 상황은 피하고 싶은 자리이다. 예전 교사의 자리에 있을 때는 더했다. 매 시간 마다 계속되는 다툼 후 불려온 아이들은 서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바빴고 그 이야기 속에서 판사의 역할을 하기에 급급했던 때가 있었다. 참 곤혹스러웠던 경험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판단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나 옳바른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본다. 게다가 아이들이 각자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근거로 '너는 이것을 잘못했고 너도 이것을 잘못했으니 서로 사과해'라고 한들 그들이 그것을 수용 하겠냐는 것이다.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치자. 판단을 받고 돌아서는 그들의 마음은 어떨까. 나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경우에 잘 해결이 되어서 뿌듯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기 보다는 파도가 지나간 뒤 부유물들이 남은 듯 찜찜하고 깔끔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걸', '아이들 마음이 어떤지나 물어볼 걸' 하는 하는 후회가 많았다.
아들은 왜 전화했을까. 친구가 전화하러 가자해서 나와서 자기도 전화하는 거라고는 했지만 마음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빠, 엄마한테 격려를 듣고 싶었을지도. 매일 내가 보고 싶으면 언제나 옆에 있었던 존재와 멀리 떨어져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그에게 다짜고짜 그의 실수를 드러내어 얘기한 것은 자기를 향한 공격으로 들렸을 것 같다.
'오랜만에 전화했는데 왜 그래?'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살아갈 때 올바른 판단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판단을 전달 할 때는 따뜻하게 사랑의 보자기에 담아야 한다. 판단을 해야만 하는 때에 이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한다면 나는 그들을 판단하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겠다. 그보다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생각이다.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마. 그리고 사랑해. 네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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