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쯤은 있을 법한 묵혀둔 이야기

지금은 넣어둔 이야기

묵혀두는 것과 넣어두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래된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보관의 의미가 더 있다. 내가 왜 이 글의 제목에 '묵혀둔'이라는 단어를 썼을까라는 생각을 잠간 했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초반 쯤이었던 것 같다. 집 근처 어딘가 식당에서 친척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였었다. 일시는 기억이 안나지만 장소와 그 때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의 기억이 이렇게 오래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충격이 컸기 때문이겠지.


식사하다 말고 무슨 이야기 하는 중에 아빠는 나를 두고 그러셨다.

"쟤는 뭐가 될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

말 토시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보통 이런 말은 자랑스럽거나 앞으로가 기대 될 때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알지 않을까. 말투와 표정만 봐도 짐작은 할 수 있을테니까.


이 말로 아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친척 모두에게 광고를 해버린 격이 되었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엺은 쓴 웃음을 지었을지, 무표정으로 일관 했을지 기억은 안나지만 기분이 좋을리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덩달아 아빠에 대한 서운함도 몰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억을 분노와 원망과 한숨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실제의 삶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 지 깨달았고 분명한 삶의 방향과 목적을 설정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억의 한 조각을 부패되도록 묵혀두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그런일이 있었지 정도의 기억으로 남겨두었다. 이제는 그 일을 떠올려도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있지 않다.


이제 나이드신 아빠는 돌아가셨고 나는 세 아이의 아빠로 서 있다. 불행하게도 자녀를 키우면서 나 역시 그런 말이 머리에 맴도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는 실수하지 않았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에게 얼마나 가슴에 박히는지 알기 때문이다. 가까운 사람들, 특히 자녀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니 어른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으로 어떤 사람의 삶에 대해 함부로 단정지어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자녀일지라도.


#차가운기억 #미래가희미했던시절 #희미한걸안보이게만든말 #하지만괜찮아 #할수있고 #해냈어 #그러니희망을갖길 #내가들은게다사실은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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