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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소빈 Sep 13. 2024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1년 만에 놀이공원을 찾았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말에 잔뜩 긴장해 있었으나, 다행히 적당히 낀 구름이 비는 뿌리지 않고 햇빛만 센스 있게 가려주었다.


작년에도, 오늘도 나의 의지로 인한 방문이 아닌, 학교에서 현장 체험 학습으로 놀이공원에 가게 된 것이었으나 어찌 됐든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놀이공원에 도착하기 전부터 친구들은 나에게


"근데 너 놀이기구 탈 수 있는 거 맞아?"


라며 장난스럽게 물어왔다. 내가 평소 사소한 것에도 곧잘 놀라고 겁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사실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어둠'을 두려워하고 '영적인 존재'들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나의 귀를 아프게 울리는 '큰 소리'를 싫어한다. 공통적으로, 그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어둠은 나의 눈을 까맣게 가려 앞이 보이지 않게 만들고, 귀신은 내가 볼 수도, 물리적으로 접촉할 수도 없는 존재라서 막연히 두렵다. 그리고 커다란 소음은 늘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갑작스럽고 성급하게 내 귀에 밀려들어와 나의 귀를 틀어막는다. 그래서 위험에 내가 곧바로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것들 앞에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러나 놀이 기구는 좀 다르다. 놀이 기구의 운행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무엇을 탑승할지 고를 수 있고, 레일 꼭대기에서 내가 어디로 떨어질 예정인지 내려다볼 수 있다. 또한 나를 태운 이 기구가 어느 방향으로 회전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놀이기구는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보다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시켜 주는 요소로 다가온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꽤나 간사해서, 건강하고 평화로운 때에는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그 자체로서의 소중함이 잊혀지는 때가 많다. 그러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 극한의 상황에 놓여지면 그제야 그 소중함을 알아차린다. 물론 놀이기구에는 안전장치가 있고, 수시로 점검을 하기 때문에 (가끔씩 놀이공원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으니) 위험도가 그렇게 높다고 보기엔 조금 애매하다. 그러나 평소에는 올라와 볼 일이 없는 아찔한 높이까지 도달한 뒤 빠른 속도로 낙하하는 일은 스릴감과 긴장감과 두려움, 아드레날린이 뒤범벅된 감정들을 한껏 쏟아내며, 여전히 나의 육신에 질기게 붙어있는 '생명'을 다시금 의식하고 바라보도록 만든다. 


위험해 보이는 놀이 기구마다 대기열이 이리 긴 것으로 보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이다.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청껏 소리치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린 사람들. 아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그 순간만큼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들 틈에 섞여든 나는 함께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내 눈앞의 상황에 조금 더 깊이 집중해 본다. 그러면 사람들의 외침에 묻힌 주변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내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레일 위로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옆좌석에 함께 탑승한 친구의 목걸이가 기구를 탁탁 때리는 소리와 놀이 기구가 뒤집힐 때마다 단단히 고정된 안전장치가 나를 붙잡으며 내는 덜걱덜걱하는 소리. 비록 평화와는 거리가 먼 소리들이지만 신기하게도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왠지 나의 마음 한구석이 편해진다.


그렇게 그 순간을 만끽하다 보면, 맨 처음 출발했던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길고 험한 여정을 겪었는데 다시 제자리라는 것은, 어찌 보면 절망적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뭐든지 다시 선택하고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면, 음. 그건 꽤나 괜찮은 상황이 아닐까.


/


인생에서 한 번씩 발생하는 이런 변화는 나를 즐겁게 한다.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단조로운 인생의 레일에서 잠깐 벗어나 색다른 경험을 만끽하고 돌아오는 것 말이다. 그러면 여러 빛깔의 단어들은 회전목마를 타고 오르락내리락거리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는 그들 중 내 마음을 건드는 것을 골라 내 문장 속으로 들여보낸다. 그러다 보면 자이로드롭이 순식간에 후욱 낙하하듯이 어떠한 깨달음이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다. 그러고 나선 소지품 보관함에 잠시 두었던 나의 물건들을 그 생각들과 함께 주워다가 소중히 챙겨든다.

놀이공원은 가족들의 공간이자 연인들의 공간이고 추억의 공간, 즐거움의 공간인 한편 누군가에겐 사색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색에서 도출해 낸 나름의 이치나는 지금 그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 중이다.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왔을 때도 그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곳에서 단순히 한순간의 쾌락과 재미만을 느끼다가 빈 손으로 되돌아온 것이 아니다. 내 양손에는 기념품과 사진, 그리고 어떠한 깨달음의 조각이 함께 쥐어져 있다. 나는 물건을 쥔 나의 손을 한참 동안 응시한다. 정신이 멍해질 때까지 바라본다. 그러자 놀이기구에서 내린 직후처럼 공중에 떠서 걷는 듯한 요상한 느낌이 든다.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어지러운 느낌도 든다. 이 느낌은 놀이 기구를 너무 열심히 탄 후유증일까, 아니면 어지럽게 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나의 생각이 재정비되는 과정일까?


피로가 감도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했다. 눈을 반복해서 감았다가 뜨기를 몇 번.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다-꿈속에서 하늘을 비행했던 것도 같다. 풍선과 비눗방울을 따라 하늘 위로, 위로 올라가다가 그들이 모조리 터져버렸을 때에 눈을 떴던가. 기억이 불분명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시계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두 바퀴를 돌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끝나버린 어젯밤을 지나 다시 오늘 아침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어제 아침과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나의 삶을 바라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4시간의 여정,

그 시간은 결코 의미 없이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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