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되고 싶었던 너에게
“있잖아. 이런 추운 겨울에는 꽃들은 너무나도 약해서 바람막이를 씌워줘야 한대.”
항상 바람막이를 입고서 그런 말을 하던 너, 그런 너에게 “그럼 넌 꽃도 아닌데 왜 바람막이를 입니?”라며 널 모질게 비웃던 나. 넌 꽃을 사랑했다. 다음 생에 또다시 태어나면 꽃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할 정도로 넌 꽃을 아주 많이도 사랑했다. 그리고 난 그런 네가 싫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리석은 질투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알고 지낸 5년이라는 긴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넌 지금도 그렇듯 처음에도 내가 아닌 꽃만 바라봤다. 그 눈빛이 가끔은 애처로워서, 또 다정해서 그런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꽃을 좋아하는 척 의도적으로 다가간 건 나였다. 그래도 그 이후로 알고 지내면서 우리가 다툰 적은 있어도 나름 행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넌 아니었던 걸까? 너의 뜻대로 꽃이 되고 싶어서 이 차디찬 바닷속으로 내게 아무 말도 없이 가라앉아버린 걸까? 무엇이 널 힘들게 해서 난 눈치채지 못한 걸까? 너에게 미안한 건 죽고 난 지금도 그 이유에 대한 감이 하나도 안 온다는 것이다.
난 너의 그 웃음 뒤에 쓸쓸함과 두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너와 함께 하며 그 누구보다도 너에 대해 잘 아는 건 나밖에 없을 거라고 자만해왔는데 남보다도 못했구나. 죄책감이 들었다. 너의 마음속 공허한 빈 곳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과 유일하게 좋아하는 거라고는 꽃뿐이던 너에게 늘 그만 좀 하라고 속으로는 질투하고 겉으로는 비웃던 과거의 나를 증오했다.
후회했다.
자책하고 또 후회하며 너의 자그마한 온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네가 마지막에 울며 떠났을지 작게나마 웃으며 떠났을지도 모르는 나는 이곳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또 이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석 달이 다 됐을까? 꽃이 필 계절도 아닌데 추운 이곳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 마치 네가 되돌아오기라도 한 듯… 그제야 너의 말이 맴돌았다.
‘꽃들은 너무나도 약해서 바람막이를 씌워줘야 한 대.’
너의 표정과 따듯했던 말투를 떠올리며 난 바로 구멍가게로 뛰어갔다. 난 너처럼 꽃을 많이 사랑하지는 않지만 네가 했던 것처럼, 네가 꽃을 사랑하고 지켜줬던 것처럼 너일지도 모르는 이 꽃을 내가 지켜줄 수는 없을까? 그리고 다짐했다. 바람막이라고 하기에는 좀 허술한 이 비닐을 너에게 씌워주면서, 이제는 내가 네가 돼서 이 꽃이 지기 전까지 만큼은 이 꽃을 지켜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