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씨의 처참하고 비통한, 아름다운 사람은 지는 꽃처럼 명이 짧다는 가인박명한 이야기
예로부터 미인은 불행(不幸)하거나 병약(病弱)하여 요절하는 일이 많아 이를 가인박명이라 불렀다.
‘봄이 끝나갈 무렵 꽃이 폈다가 지기 마련인데, 모두가 질 때 피는 꽃나무가 있으니 봄이 끝나가도 외롭지 않겠지요. 요란스럽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향기를 머금고 누구도 모르게 매력을 취하오니 이 아낙의 마음과도 같사옵니다.’
아주 먼 옛날 아름다운 아씨가 살았습니다. 명문 높은 집안의 예쁘고 똘똘하기까지 하니 그 아씨보다 더 부러운 삶이 없었겠지요. 아씨는 어릴 적 일방적으로 맺어준 정혼이 있었으나, 그 정혼을 하고 싶지 않아 하였습니다. 그저 이 소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겠지요. 아씨의 아버지는 늘 다그쳤고 그이는 늘 다정했소이다.
그이는 아씨의 옆에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늘 웃게 해주었고 기쁘게 해주었으니 이들은 교제를 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쌓여만 갔습니다. 그리고 아씨가 그이에게 점점 마음에 두는 동안 혼례식은 일 년, 이 년이 지나 석 달도 남지 않았고 아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듯하옵니다. 아씨의 몸은 심하게 야위었고 이불을 꼭 덮어도 손발이 얼어붙어 의원 또한 모르는 병에 걸려 하루하루가 다르게 몸이 점점 쇠화되었으니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일어날 수는 있었는데 오늘이 되니 일어날 수도 없구나. 그이가 이 모습을 보면 분명 놀랄 터이지, 날 보고 도망 칠지도 모르는 게야."
이 아씨 야윈 모습으로 누워 명자나무를 한참 동안 바라봅니다. 마치 누구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후에 아씨는 한숨을 내쉬며 “얼른 나아서 거동을 할 수 있기를” 마른입으로 힘들게 내뱉어나요. 그리고 열흘 남은 혼례식 도령이 아씨를 찾아와 잠이 든 아씨에게 말을 청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이 지는 것처럼 명이 짧다는구나 너도 그런 것이겠지 혹 정녕 이대로 네가 눈을 뜨지 않는데도 훗날에 다시 만나, 그때는 저 나비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하자구나”
도령은 깊은 말을 한 뒤 아씨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도령 쪽 가문에서 파혼을 청하게 됩니다. 이 아씨도 결국 도령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깊은 잠에 들어 영영 깨어나지도 못한 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