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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가을 그 무렵의 나는 네게 무슨 말을 하고 싶

좋아하면서도 힘든 너에게 위로도 못한 날 용서하지마

by Doorweekzero

‘조금 뜨거웠던 햇살 그리고 입가에 고인 너의 입꼬리까지도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 내가 너를 좋아하던 시간들 파도처럼 낮게 닿는 목소리가 따스한 저 햇살처럼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 그냥 나는 네가 좋았어’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운이 없다는 말로는 그냥 끝낼 수 없는 그런 억울한 날. 오늘은 그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름 방학이 끝난 개학식 누구나 학교는 가기 싫겠지만 난 남들의 몇 배는 더 깊게 가기가 싫었다. 유독 그날따라 더 말이다. 그날은 등교를 하다가 내가 아끼는 분홍색의 지갑을 잃어버리고 그 덕분에 마을버스도 타지 못해 개학식날부터 지각을 해버리고 만 날이다. 이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누구에게 알리고 싶어, 반을 들어왔을 때 나는 조용히 자리를 앉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친구가 없었으니까, 얼마나 심각한 정도였냐면 음, 반년이 지났는데도 서로의 이름을 잘 모른다는 것? 그래서 내게는 한 습관이 있다. 반 애들이 쉬는 시간에 무리 지어 옹기종기 앉아있을 때의 나는 종이에 끄적끄적거리며 낙서를 하는 작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도 그렇게 또 평범하게 낙서를 하고 있었다. 여자애들은 모여서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 남자애들은 종이를 구겨서 던지며 놀고 있었다.

‘퍽-’

‘그리고 그때 너가 던진 종이공에 맞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이렇게 아파할 일을 없었을 텐데‘

종이공을 맞은 순간, 반 친구들은 짜기라도 한 듯 분위기가 싸해졌고 곧네 나를 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을 던진 넌 내게 곧장 달려와 괜찮냐고 물었다. 그때의 나는 아마 이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거다. 그리고 그 후 넌 내게 부쩍이나 말을 많이 걸어줬다. 하루는 밥은 먹고 다니냐며 네가 먹던 삼각 김밥을 내 입에 넣어줬으며 하루는 끄적끄적 낙서하는 게 습관이던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넌 그림도 잘그리고 못하는 게 없네 꼬맹아’라며 머리를 헝크린 적이 있다. 나도 아마 이맘때부터 너에게 관심이 생긴 듯하다.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려는 시점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날씨는 반팔만 입기에는 쌀쌀한 날씨로 바뀌었다. 그리고 항상 뛰어놀기 바쁘던 너도 늘 엎드려 누워있기만 했다. 그렇게 활발해서 웃기만 했던 네가 웃지를 않았다. 수업 시간이 되면 너의 유머로 분위기를 조성하던 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늘 엎어져 색색거리기만 했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든, 매점을 가든 내게 꼬맹이라 부르며 갔다 오겠다고 통보를 한 뒤 복도를 나가던 너는 이제 내게 꼬맹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하루 뒤 야자 시간에는 신이 정말 미치기라도 한 듯 갑자기 비가 후드득 떨어지더니 끝내 번개까지 치고 있었다. 대체로 우리 반은 통학생이 많아, 만약의 상태를 대비해 사물함에 우산을 넣고 다녔고 나 또한 우산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자가 끝나 하나둘씩, 집으로 향할 때쯤 저 멀리서 회색 후드티 모자만 쓰고 비를 맞고 가는 너의 모습이 보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길바닥이 흙탕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하여나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 돼서 네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던 우산을 너에게 건네주려고 했지만 착한 넌 역시나 받지 않았다. 그래도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네가 괜찮다고 했다고 해도 너의 손에 우산을 꼭 쥐어는 주고 올 걸

그렇게 비가 한참을 내리고 주말이 지나서, 월요일이 되었다. 학교를 가보니 학교에서 애들은 암흑한 분위기였다. 몇 명은 울고 몇 명은 수군거렸으며, 몇 명은 경악하기도 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반으로 걸음을 돌렸다. 반을 들어가기 전까지도 네가 내 뒤에 있지는 않을까? 오늘은 우울하지 않고 기분이 좋아서 내게 꼬맹이라고 불러주지는 않을까? 만약 네가 내게 꼬맹이라고 불러준다면 난 무슨 반응을 보여줘야 할까?라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반을 들어갔다. 반을 들어서보니 너의 자리에 국화꽃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지나치게 암흑적인 분위기와 몇 명은 울고 몇 명은 수군거리고 몇 명은... 경악하기도 했던 것들이, 이제야 이해가 됐다. ’장난이겠지 친한 친구들이 장난친 거겠지‘라며 불안한 내 마음도 숨겨봤지만 잔인하게도 너가 죽은 게 맞았다. 한참 동안 네 자리를 보며 멍하니 있다가 너와 친했던 친구 중 한 명이 내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어찌나 울어댄 것인지 눈이 많이도 부어있는 채로 내게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냐면서 물었다. 나는 그 대답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비가 심하게 내렸던 그날, 네가 내 우산을 받지 않았던 그날이니까. 네 친했던 친구도 이렇게 너를 떠나보낸 게 슬프고 믿기지가 않을 텐데 너를 좋아했던 난 얼마나 괴롭겠니

한참을 울었다. 남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내가 그 자리에서 너의 친구와 계속 울부지었다.


떠나고 난 뒤 장마철은 끝나고 금세 맑은 하늘로 돌아왔어. 맑은 하늘은 마치 살아생전의 네 모습 같아서 난 네가 떠나고 난 뒤 맑은 날씨가 무서워졌어. 맑은 하늘을 보면 네가 너무 생각나서, 졸업을 했는데도 학교를 가면 네가 있을 것 같고, 머리를 쓰담으면서 오늘은 딸기 우유라며 웃으며 건네줄 것만 같아.


나는 계속해서 너를 잊지 못하고 살아갈 게 분명한데, 어떻게 내가 열여덟 살의 너를 두고 스무 살의 내가 될 수 있을까. 멈춰버린 우리의 시간을 버리지 못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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