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의 시대로
오랜만에 “一人カラオケ(1인가라오케)”를 했습니다. 첫곡으로 버즈의 “모놀로그“를 부르는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추억에 대한 감정들이 마른땅에 봄비가 젖히듯이 촉촉해졌어요. 노래는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새삼 느꼈죠.
두 시간을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일본 곡 중에 美空ひばり상의 「川の流れのように」을 부르는데 가슴이 턱 막히면서 눈물이 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감정적이었나?! 할 정도 가사에 몰입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올랐던 거죠. 가사를 공유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生きることは旅すること
산다는 것은 여행과 같아
終わりのないこの道
끝나지 않는 이 길
愛する人そばの連れて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夢探しながら
꿈을 찾으면서
젊었을 때는 모른척하고 있었던 인생에 대해 조금은 깨달아서 그러는 걸까요? 언어로는 표현 못했던 관념들이 곡조 있는 문장 속에서 춤을 추고 제 마음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어의 힘은 실제의 삶과 강하게 연결시키고 제한적인 상상력에 생기를 불어주었습니다.
최근 많은 가요 중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불려집니다. 단어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 단어에 포함된 의미는 많이 변했습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리고 단어들이 레토릭(수사법)에 사용되어 기호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문장이 발화자의 입에서 나와서 허공에서 맴돌고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전에 없어집니다. 설령 수화자에 소리가 도착하더라도 그 단어가 레토릭적으로 사용되어서 자신의 삶과 아무 관계는 소리가 되어버립니다. 즉 언어가 하나의 기호로 전락되어 감정을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좋은 말들이 넘쳐가고 있는데 실제로 우리들의 삶이 삭막해지는 거는 언어의 기능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언어와 관념의 모순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언어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팩트”라는 누군가의 관점에서 보는 “정답”만이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나 권위적이며 위압적입니까?
자신이 말하는 언어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보지 않겠습니까? 인생에서 많은 거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만 거라도 “진짜”의 모습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중요합니다. 언어를 맛보며 “진짜”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로맨티시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