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기대하는 비합리적인 사고
현대인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하지 않나요? 오늘날 일어나는 사회문제들은 개인이 일을 너무 많이 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인듯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은 모든 문제들의 발생점에서의 고찰이 우선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의 현장과 떨어져 생활하는 정치인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품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사회제도를 개선하시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입법절차를 통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모든 사회문제해결의 출발점은 아닙니다.
2년 전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엔 아내가 임신을 해서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죠. 이러한 개인의 삶에서의 점진적인 변화는 자연스럽게 일상(육아와 교육)을 고찰하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개인의 사고의 확장은 정말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입니다.
‘지금의 사회적 구조에서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는가?’
어느덧 문득 위의 의문점이 강하게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변환기가 찾아오다고 하는데 현재 제가 느끼는 거부반응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끊임없는 긴장관계’
인간사회에서는 위의 사실이 언제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고 싶어 하는 개인의 인생계획과 사회상식이 이끌려고 하는 계획 간의 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예를 들면 육아휴직은 법제도적으로 정비해 나가는 거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육아휴직 이후의 가정을 지켜나가는 데 있어서 한 개인이 사회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항목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개인이 거대한 사회에 맞서 용기를 가지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요구합니다.
다음 주 국회의원 총선이 치러집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이긴 하나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변화의 출발점은 시민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삶의 변화는 절대 톱-다운 식으로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잠깐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로 인한 부작용은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끼칠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내 삶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겸허하게 어떠한 결과라고 받아들이고 미래의 일어날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재화들을 스스로 생각하고 획득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합니다. 모든 문제를 타인에게서 해결 받지 않고 자립심과 능력을 키워 지켜나가야 하는 것, 이러한 삶의 태도가 개인에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자세라고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