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 취미는 독서다.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을 붙들고 있다 보니,
회사에서는 이미 공공연히
내 취미가 독서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직장 동료들이
“책 좀 추천해 줄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진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동료의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할까?
혹은 독서가 취미로 알려져 있으니,
조금 있어 보이는 책을 추천해야 할까?
이렇게 갈등하던 끝에
나는 하나의 원칙을 정했다.
“어차피 한 권만 추천해야 한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을 고르자.”
사람은 절실한 순간에
진짜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
“만약 집에 불이 났고,
책 한 권만 들고나가야 한다면,
나는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책이 있었다.
바로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빅토르 프랑클은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고난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여동생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절망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클은 달랐다.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게 해 주는지 증명해 냈다.
“삶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딜 수 있다.”
("He who has a why to live can bear almost any how.")
나는 대학 시절 이 책을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삶의 열정과 희망은 사라졌고,
앞으로 나아갈 힘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내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 이후로, 인생이 힘들어질 때마다
나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할 때면
꼭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에 나를 일으켜 준 책이다.
지금도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내게 힘을 주는 책이다.”
아쉽게도,
내 책 추천 실력이 미천한 까닭에
이 책을 소개하더라도,
직장 동료들 중 실제로 책을 구해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고,
과거의 나처럼 힘든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