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과 열등감의 사이에서
오늘은 출장이 있었다.
그래서 점심을 일찍 먹고 회사를 나와 출장 지역으로 이동을 했고,
조금이나마 회사와 멀어진다는 들뜬 마음을 가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난 출장이 있는 날이면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인 팀 로빈스가 된 느낌으로,
자유의 느낌을 만끽하며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려다가,
이상한 인간으로 유튜브 인기 동영상 상위에 랭크되면 어쩌나 싶어 자제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마침내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가 회사와 멀어질수록 군대에서 휴가 나온 병사처럼 따스한 공기가 느껴졌다.
4월이 되어서야 봄이 왔음을 실감한 것이다.
매일 퇴근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출장을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느끼는 것은 굉장히 의아한 일이다.
어쩌면 계절은 온도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게임도 하고,
인터넷 기사도 보고, 책도 읽으며 자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버스 안에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마치 내가 버스를 전세내고 가는 것 같았다.
안락함과 자유, 그리고 평온함. 이것만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자리 앞으로 두 번째 좌석에서 어떠한 사람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벨 멜로디는 뭔가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한국 노래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가사는 전혀 내가 들어 보지 못한 언어로 되어 있었다.
전화벨이 서너 번 정도 울리고 나서야 한국 노래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노래가 두 번 반복된 이후, 전화를 받는 여성의 대답을 통해서
외국인이 전화를 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화를 받은 외국인은 빨간색 옷을 입은 동남아 여성분이었고,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었다.
그분은 목소리가 굉장히 우렁찬 편이었기 때문에,
행복하던 나의 버스 시간이 점점 괴로움과 짜증으로 점 칠 되어 갔다.
물론 버스에서 누구나 통화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5분 정도면 전화가 끊어질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통화시간은 30분을 넘어가고 있었고,
버스에 탄 소수의 사람들은 불만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고민을 했다.
‘조용히 가서 전화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눈을 감고 잠을 청해야 하나.
전화하는 아주머니 목소리의 음색과 크기로 볼 때, 절대로 잠을 잘 수는 없을 텐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편하게 계속 버스에 있어야 하는가.’
한 10분 정도 고민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통화 시간은 40분을 돌파하고 있었다.
외국인 아주머니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핸드폰 너머 상대를 향해야 할 그분의 목소리는 나의 가슴에 박혀 상처를 내고 있었고,
나는 소심한 마음을 움켜쥐고 상처에 반창고를 치덕치덕 발라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줌마 거 좀 조용히 해요! 시끄러워서 운전을 못하겠네!”
운전기사 아저씨가 짜증이 났는지, 아주머니께 크게 이야기를 했고
외국인 아주머니도 조금 눈치를 챘는지 목소리를 줄였다.
한 10분이 지났을까, 다시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오뚝이가 일어서듯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버스 안을 음파로 물들이고 있었고, 또다시 나의 마음은 불편한 마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났다.
갑자기 버스가 섰다. 앞을 보니 신호등은 빨간색.
그 순간 버스 아저씨는 상기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와 아주머니에게 화를 냈다.
“조용히 하라고 한 거 안 들려요!? 조용히 하라고요!”
아저씨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고, 버스는 고요해졌다.
방금 전에 아주머니가 다양한 음색으로 버스를 물들인 것이 무색하게,
버스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엄숙함을 유지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다시 고요함과 편안함을 즐기며 행복해야 할 내 마음은,
버스 안의 평화를 가져다준 기사아저씨를 응원하기는커녕,
간사하기 짝이 없게도 외국인 아주머니의 편을 들고 있었다.
용기 없는 내가 머릿속으로 수백 번을 상상하던 행동을 한 아저씨를 칭송하지는 못할지언정,
아저씨가 너무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외국인인데, 혼자 버스에 타서 얼마나 위축이 되어 있을까? 아저씨가 너무한 거 아닐까?
한국에서 워낙 말이 안 통해서 힘들어하다가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와 통화했을 수도 있을 텐데,
아니면 굉장히 급한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이건 마치, 마치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보다.
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도대체가 이런 감정은 약자가 약자에게 느끼는 동질감에서 태어난 연민에서 온 것이었는지,
용기 없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을 보며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에서 온 것이었는지,
당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즐거운 출장이 스핑크스에게 잡아먹혀 버린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