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작은 아름다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분명 주어진 일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다른 사람의 일을 떠맡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오해를 사는 일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나는 종종 '시간의 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
내가 처음 '시간의 점'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워즈워스를 소개하며 여행과 관련된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워즈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그리고 워즈워스가 이야기했던,
‘시간의 점’이라는 표현이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 속에서 '시간의 점'은 여행 중 만나는 특정한 순간,
마치 사진 속 한 장면처럼 마음속에 선명히 새겨지는 기억의 조각을 뜻한다.
그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고,
마치 풍경화처럼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는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만 그런 특별한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 일상 속에도 그런 순간들이 숨어 있는 걸까?
바쁜 직장생활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종종 과거의 '시간의 점'을 떠올린다.
대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학점과 취업에 대한 압박으로 조급함이 점점 커져 가던 시기였다.
솔직히 무언가를 바라볼 여유조차 없었다.
어느 날, 강의실로 향하던 중
갑작스러운 휴강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허둥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땀을 식혔다.
그 순간,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빛이 만들어낸 작은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춤추는 모습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한 번은 직장 생활을 쉬고
가족들과 외가에서 며칠 머물던 때였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를 짓누르던 그 시기,
어린 시절 뛰놀던 뒷동산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른 시간에 혼자 뒷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한 가운데,
공기는 서늘했고, 숲 속에는 잔잔한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뒷동산 정상에 다다르자,
햇살이 짙은 바닷속 안개를 뚫고 천천히 퍼져 나가며
세상을 깨우는 듯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햇살은 안갯속에서 부드럽게 퍼지며
주변의 나무와 들판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였고,
그 광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마치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그날의 햇빛은 내 마음에 묵직하게 남아 있던 불안을
살며시 거두어 가는 것 같았다.
그 장면들은 내 삶의 선 위에 찍힌 '시간의 점'들이다.
그 점들은 내가 힘들 때마다 다시 호흡할 수 있게 해 준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일상을 재정의하고,
삶 속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의 점'은 여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보석 같은 순간들이다.
삶은 거대한 그림 한 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삶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가 살아온 길을 만들고,
그 길 위에 찍힌 시간의 점들이
삶에 작은 의미와 아름다움을 더한다.
나에게 '시간의 점'은 힐링과 위로를 주는 순간이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조용한 풍경,
우연히 들은 따뜻한 말,
혹은 누군가와 나눈 짧은 미소 같은 것들.
삶은 때로 무겁고 버겁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점' 하나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그 점을 찾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점들이 더 선명해지고,
내 삶의 지도가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하며.
그것이 결국,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