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 고여 있을 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화를 참는 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말을 아끼는 게 지혜라고.
감정을 숨기는 게 사회생활이라고.
나는 그 말에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왔다.
내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생각하고,
나의 입장보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살폈다.
그리고 그렇게 수없이 많은 작은 분노들을
그저 ‘참는 법’으로 배워왔다.
하지만 참는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분노들은 말하지 못한 채
천천히, 조용히 마음 어딘가에 고여 있었다.
가끔은
별일 아닌 말 한마디에 울컥한다.
회의 중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상사의 무례한 말투,
내 몫까지 자연스럽게 넘기는 누군가의 습관,
감정은커녕 존중조차 느껴지지 않는 관계들.
참고, 또 참고,
웃으며 넘겼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 창가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은 적이 있다.
"왜 나는 항상 참는 쪽이어야 할까"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어떤 날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혼자 밥을 먹으며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짜증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그냥 내가 너무 지쳤다는 감정.
생각해 보면
그건 분노였다.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분노,
내가 너무 무시당하고 있다는 분노,
그리고 그런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우리는 분노를
나쁜 감정이라고 배워왔다.
화를 내면 다툼이 생기고,
다툼은 관계를 망친다고.
그래서 말 대신 삼켰고,
표정 대신 침묵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분노는, 나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감정이라는 걸.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그 상황에서 내가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들에 스스로 답하며
내 감정을 하나씩 해석해 보기 시작했다.
화가 나는 건,
내가 나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존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우받고 싶은
아주 기본적인 바람 때문이다.
그걸 지키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은 화를 내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지금,
나는 이제야 조금씩
‘건강하게 화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예전처럼 소리치지도 않고,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참지는 않는다.
분노는 어쩌면
마음의 방어기제이자,
나 자신을 향한 작은 경고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무시당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말라고.
그 감정은 내 자존감이 보내는 신호라고.
그래서 이제는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화를 느낄 땐,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를 돌아보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방식으로 말한다.
그 덕분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진실해졌고,
무엇보다
내가 나를 더 존중하게 되었다.
분노는 절대 나쁜 감정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무시당하고 싶지 않고,
존재를 투명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인간적인 본능이다.
감정을 참는 것이 성숙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진짜 어른스러움이라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