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간식을 눈앞에 두고도

병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

by 보니

387km

서울 우리 집에서 엄마가 사는 통영까지 네비로 찍으면 거리가 이렇게 찍힌다.


설날을 앞두고 홀로 있는 엄마에게 내려왔다.

일과를 마치고 내려가야 해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

사람들이 왜 자꾸 밤에 내려가냐고 걱정했다. “차가 안 막히니까. “


오늘도 간식을 잔뜩 챙겨서 차에 탔다.

간식거리가 있으면, 왠지 든든하다. 조수석에 간식 장바구니를 손 닿기 쉽게 열어놓고 운전을 한다.

약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린 후에 휴게소에 들렀다.

간식장바구니는 손도 대지 않았지만, 휴게소 편의점에서 최애간식을 가득 품에 안았다.

오란씨, 트레비, 생수, 짱구, 그리고 뻥튀기까지.

기분이 좋아져서 차에 탔다. “완전 많이 샀어!” 마치 누가 차에 있는 것처럼 신나게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나의 최애 간식인 오란씨를 열었다. 잘 안 열렸다. 다시 힘주고!!! 안 열린다! 아 진짜!!

다시 복근에 힘을 주고 열어보려 했지만, 복근의 힘이 내 손까지는 아직 오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먹고 싶은 내 오란씨~! 아 이걸 어쩌지? 다시 한번 더 힘을 줘 보지만 안 열린다.

‘오란씨 관계자님들 뚜껑 좀 잘 열리게 만들어 주세요’ 속으로 외쳐보았다.

어쩔 수 없이 트레비를 마시며 출발했다.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했다. 약간 눈발이 날리는 듯했다. 먹어치운 쓰레기를 정리하고 다시 한번 오란씨 뚜껑 열기에 도전!!

안 열린다!!

“아 주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차마 부끄러워 다른 사람에게 이것 좀 열어주세요라고 부탁하기가 힘들다.

온갖 기도를 하며 주님께 능력을 구했지만, 이런 능력을 주실 것 같은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피식 웃어버렸다. 할 수 없다. 빙그레 아카펠라 아메리카노 뚜껑을 열었다. 이것도 잘 안 열린다. 아~놔!

그나마 이건 복근의 힘이 작용했는지 두 번의 시도만에 열렸다.

그래도 오란씨를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387km를 달리는 동안 오란씨를 쳐다만 보았다.

엄마 집 주차장에 도착해서 형제들에게 도착 메시지를 보내며 뚜껑이 안 열려 못 마셨다고 했다.

고무장갑 끼고 열면 된다. 가위 손잡이 부분에 있는 톱니로 뚜껑을 열면 된다. 이런 해결책을 보내왔다.

내 차에 고무장갑을 비치해야 할 판이다.


집에서 고무장갑을 끼고 여니 열렸다.

사실은 음료 뚜껑을 열지 못해 거의 한 달째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유리병에 담긴 탄산수 페리에가 그것이다. 이것도 꽤 씨름을 했다. 아래에 붙어 있던 얇은 지지대 같은 것도 제거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그전 두 유리병은 어떻게 열어서 마셨다. 이 놈은 이상하게 도대체 꿈쩍을 하지 않는다. 어찌 열지 몰라 고민하다가 내친김에 네이버 검색을 했다. 죄다 무슨 스파게티 병 여는 것만 적혀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자취생 포동이라는 분의 블로그를 오늘에야 찾아냈다. 아주 합리적이며 효과 있는 방법만 소개해 놓았다.

https://m.blog.naver.com/clementine2023/223660854792

특히 주방가위 톱니 부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사진도 찍어놓아서 유용했다.


약 한 달 전, 엄마는 갈비뼈에 금이 갔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 더 부러져 버렸다.

우리 엄마는 옛날 일은 기억이 선명하다. 특히 아버지가 뱉은 몹쓸 모진 말들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죽도 안 하고 애 미기고 있다.” 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나오는 단골멘트다.

어릴 때 자식들이 아프면 아버지가 툭 내뱉는 말이었다.

우리 자식들이 많이도 심하게 오래 아프기도 했지만, 엄마 가슴에는 그 말이 대못이 되어 박힌 듯하다.


엄마는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대중탕을 가셨다. 평소에는 혼자 못 들어가게 하는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냐고 물어봤다.

지팡이가 없이 그냥 잘 걷는 척 연기하며 들어갔다고 했다.

엄마집에서 목욕탕까지 보통 성인은 6분 안에 갈 수 있다. 엄마는 이 길을 30분이 넘게 걸린다.

뼈가 부러진 고통과 다리가 아픈 고통까지 참아가며 목욕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뼈가 부러져서 힘들지만, 모든 것이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 명절선물로 보낸 한과를 한나절이 지난 후에야 찾아냈다.

예전 어르신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되면 되게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손에 유난히 힘이 떨어지는 나는 오란씨 하나도 열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뼈가 부러진 우리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신의 단도리를 하고 있다.

전쟁을 거친 엄마는 아마도 숨이 다하는 그날 까지도 자신이 해야 할 들을 끝까지 하실 것 같다.

오란씨가 수월하게 열렸다면, 주방가위 톱니 부분의 역할을 몰랐을 것이고, 엄마도 모진 고생을 하며 살지 않았다면, 쉽게 삶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은 어쩌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훈련도구일 수도 있다.

상황만 바라보며 한탄하기보다는 어떻게 뛰어넘느냐가 인생의 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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